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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5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5 영주(榮州) 현령공(縣令公) 선조의 유사(遺事)    공(公)의 휘는 윤(綸)이요 자는 윤언(允言)이다. 송씨(宋氏)가 야성(冶城) 사람이 된 것은 고려조에 야성군(冶城君)에 봉해지고 벼슬이 간의대부(諫議大夫)인 휘 맹영(孟英)으로부터 비롯되었다.10세(世)를 전해 내려오는 휘 길창(吉昌)은 벼슬이 개성윤(開城尹)으로써 세습(世襲)하여 야성군(冶城君)에 봉해졌으며 휘 천우(千祐)는 벼슬이 판결사(判決事)요 휘 수겸(守謙)은 벼슬이 현령(縣令)이니 바로 공의 증조(曾祖)와 조부(祖父)와 아버지시다.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니 우의정(右議政) 벼슬을 지낸 진(軫)의 따님이며 다섯 장부(丈夫)의 아들을 두었으니 공이 그 넷째 아들이다.아모 연월일(年月日)에 ..

뿌리 2024.05.17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4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4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세거지(世居地) - 4 가천(佳川=가래·豆田 4里)  1. 가천(佳川) 마을의 위치(位置) 영주시내에서 예천 방향으로 향하면 폴리택대학 영주캠퍼스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오른쪽 길을 찾아 고개를 넘으면 나타나는 마을이 가천이다.가천은 장수면 동북부에 위치하며 서쪽은 띳밭(모전) 북쪽으로는 정불산을 등지고 반지미와 남쪽으로는 문정동과 경계하고 있다. 2. 가천(佳川) 마을의 유래(由來) 조선 광해군(光海君) 이전에는 본 마을에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은 어느 문헌을 통해서도 고증할 수 없고, 다만 선인(先人)들의 분묘(墳墓)의 소재와 구전(口傳)되는 전설(傳說)에 의하여 야성송씨(冶城宋氏)가 처음 마을을 열어 세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야성송..

뿌리 2024.05.16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3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3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세거지(世居地) - 3 갈산3리(葛山3里 = 아랫갈미) 체락정(棣樂亭) 1. 아랫갈미(下葛)의 지명유래 장수면사무소에서 예천 방향으로 2km쯤 가면 오른쪽에 아랫갈미(下葛)라는 마을이 있는데 혜계(慧溪)라고 부르다가 갈뫼 또는 갈미라고 불렀다.이 마을은 조선조 1606년 (선조39)에 한양조씨 회계(檜溪) 조관(趙貫)등이 입향 하였는데 1698(중종24) 큰 수해를 당하여 조 씨들은 예천군 감천면 유동으로 이주한 후 야성송씨(冶城宋氏) 송사행(宋思行)의 후손들이 다시 개척하여 윗갈미와 구별하여 아랫갈미라 부르고 있다. 마을 앞에는 널찍한 들판이 있고 들판 너머로는 우곡천(파지천)이 흐른다. 우곡천 남쪽으로는 “옥산”, 서북쪽으로는 “성골..

뿌리 2024.05.15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2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2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세거지(世居地) - 2 호구실(송호-松湖)   송고정(松辜亭) 호구실은 약 400년의 야성송씨(冶城宋氏) 세거지로서 우리 송문(宋門)이 처음 입촌하여 살게 된 것은 1617년 고송헌(孤松軒) 선조(1601~1676). 20世. 휘(諱) 시옹(時雍)께서 영주 휴천(休川)리 고택에서 분가하여 새살림을 차림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때는 1498년 우리 야성송씨(冶城宋氏) 영주 입향조인 눌재(訥齋, 선조(1454~1524, 15世 휘(諱) 석충(碩忠))께서 영주로 내려 오신지 119년의 세월이 지난 뒤의 일이다. 후손인 호은(湖隱) 선생이 쓴 고송헌 유사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선생은 15세에 결혼하고 그 해 가을에 종손(宗孫)이자 백부인 동추공(同..

뿌리 2024.05.15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1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1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세거지(世居地) - 1     본관(本貫)은 경남 합천군 야로현(冶爐縣)으로 지금의 합천군 야로면이며 시조(始祖)는 고려 목종(穆宗)조(998~1007) 간의대부(諫議大夫) 중윤(中尹)으로 추봉(追封)된 휘(諱) 맹영(孟英)으로 야성군(冶城君)의 봉호(封號)와 식채(食采)를 받으셨으며, 10世에 성주(星州)로 이거(移居)하기 전까지 야로현(冶爐縣)에 세거(世居) 하였다. 하지만 거듭되는 병혁사화(兵革士禍) 등으로 9世 까지의 유당(幽堂)을 실전(失傳)하여 향화(香火)가 끊겼으나 1941년 종친들의 정성으로 합천군 야로면 구정리에 구정제(九政齋)와 망묘단비(望墓壇碑)를 세워 한식향사(寒食享祀)를 하고 있다.10世 절도공(節度公) 희미(希美..

뿌리 2024.05.15

기원전 5세기 송(宋) 청동 과(창)에 금으로 새겨진 건목귀천(建木晷天) 문양

기원전 5세기 송(宋) 청동 과(창)에 금으로 새겨진 건목귀천(建木晷天) 문양(중국 국가박물관 소장) 현재 중국에서는  송씨(宋氏)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건목귀천(建木晷天)이라는 문양을 사용하고 있는데 건목귀천(建木晷天)은 송씨(宋氏)가 사용하는 기존  宋(송나라 송)에 상나라를 건국한 고대 민족인  상족(商族)의 탄생 신화에 나오는 신비의 새 흑조(黑鳥)를 양쪽에 더한 모양이다.이 건목귀천(建木晷天)은  상나라 를 계승한  송(춘추전국시대)의 유물에서 발견되며 상나라  멸망 후에도 상족(商族)의 정체성이  송(춘추전국시대)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걸 보여준다. 송(춘추전국시대) 멸망 후에는 송씨(宋氏) 집단을 대표하는 문양으로 자리 잡고 현재에 이르게 된다.또한 현재 중국 내에서 송씨(宋氏) 집단이 가..

카테고리 없음 2024.05.09

성주(星州) 고산정(高山亭) - 16

성주(星州) 고산정(高山亭) - 16  고산정(高山亭)과 원불교(圓佛敎)   원불교 2대 종법사인 정산(鼎山) 송규(宋奎, 1900~1962) 종사는 야성송씨로 시조(始祖) 송맹영(宋孟英)의 29세 손(孫)이며 고산정 입향조 충숙공(忠肅公) 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의 14세 손(孫)이다. 정산종사는 조상 대대로 세거해 왔던 고산정에서 고개 너머 10 여리 떨어진 소성동에서 태어났는데 부친인 구산 송벽조(호적명 : 寅驥)가 결혼 후 고산정에서 소성동으로 이사를 하였다. 정산종사는 어려서부터 천품이 총명하고 기상이 화청(和淸) 하였으며 사물을 범연히 간과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기를 좋아하였으며 한번 하기로 한 일은 기어이 실행하는 결단력이 있었다. 7세 때부터 가문의 전통에 의하여 조부의 사숙(私塾)에서..

뿌리 2024.05.07

성주(星州) 고산정(高山亭) - 15

성주(星州) 고산정(高山亭) - 15  고산정(高山亭)과 항일독립운동(抗日獨立運動)  1919년 3·1 독립운동이 일어난 수일 뒤 이달필(李達馝)이 서울에서 내려와 백세각을 방문하여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에게 서울의 정세를 알리고 지금 파리에서 만국평화회의가 개최되는데 약소국가의 억울함을 펼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음을 전하면서 우리의 독립을 청원하는 문서를 제출하는 주동적 역할을 요청하였으며 공산은 다음날 일가 일문이 모인 자리에서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 나라가 회복되면 죽어도 사는 것이요. 나라가 회복되지 않으면 살아도 역시 죽는 것과 같다. 내 어찌 화(禍)와 복(福)에 관심을 두고 또 생각을 하리요. 나의 오늘의 일은 곧 선인(先人)의 뜻이다. 선인의 뜻이 있는 곳에 어찌 힘을 다하여..

뿌리 2024.05.06

성주(星州) 고산정(高山亭) - 14

성주(星州) 고산정(高山亭) - 14 고산정(高山亭)의 유적(遺蹟) - 10  ● 백세각항일의적비(百世閣抗日義跡碑)   백세각(百世閣)에서 주도한 파리장서 서명운동과 성주 장날 만세운동에 관련되어 그 공훈을 기리어 정부로부터 서훈(敍勳)을 받은 문중(門中)의 11인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 회천(晦川) 송홍래(宋鴻來), 괴당(槐堂) 송회근(宋晦根), 자광(自光) 송규선(宋圭善), 송훈익(宋勳翼), 송천흠(宋千欽), 세한재(歲寒齋) 송우선(宋祐善), 송문근(宋文根), 해여(海旅) 송인집(宋寅輯), 은포(隱圃) 송수근(宋壽根), 송명근(宋命根)을 추모(追慕)하고 애국정신 고취를 위한 교육장으로 조성하기 위해 2004년 국비(國費)와 군비(郡費)의 지원을 받고 11인의 후손(後孫)들의 성금을 모아 백세..

뿌리 2024.05.03

빨간 아카시아 꽃

빨간 아카시아 꽃 올해도, 나의집 옆길에 있는 연화사 대형 화분에 어제까지만 해도 몽오리져 있던 아카시아가 빨간색 옷을 입고 피었다 작년 이때쯤 보고 또다시 본다 초록의 잎과 어울리지 않는 빨간색의 아카시아 꽃, 빨간 아카시아 꽃은 하얀 아카시아 꽃에 비해 꽃이크고 향기도 진하다 빨간아카시아 꽃의 꽃말은 : 정신적인 사랑, 숨겨진 사랑이랍니다. * 아카시아 노래가사 아카시아 가사있다 없다 날 사랑할 사람 하나 둘 셋 꽃잎을 떼어 내며 있다 없다 늘 버릇처럼 기다려 왔어 손이 따뜻한 사람 그래 그 사람이 서 있어 바로 내 눈 앞에 서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