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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1

공간(空間) 2024. 5. 15. 07:21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1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세거지(世居地) - 1

 

 

 

 

 

본관(本貫)은 경남 합천군 야로현(冶爐縣)으로 지금의 합천군 야로면이며 시조(始祖)는 고려 목종(穆宗)(998~1007) 간의대부(諫議大夫) 중윤(中尹)으로 추봉(追封)된 휘() 맹영(孟英)으로 야성군(冶城君)의 봉호(封號)와 식채(食采)를 받으셨으며, 10에 성주(星州)로 이거(移居)하기 전까지 야로현(冶爐縣)에 세거(世居) 하였다.

하지만 거듭되는 병혁사화(兵革士禍) 등으로 9까지의 유당(幽堂)을 실전(失傳)하여 향화(香火)가 끊겼으나 1941년 종친들의 정성으로 합천군 야로면 구정리에 구정제(九政)와 망묘단비(望墓壇碑)를 세워 한식향사(寒食享祀)를 하고 있다.

10世 절도공(節度公) 희미(希美) 후손은 칠곡군(漆谷郡) 도촌(道村), 성주군(星州郡) 죽내(竹內), 용인군(龍仁郡) 송문(松門)등에 세거하고 있으며, 10世 감사공(監司公) 구(構)는 1345년 경상감사(慶尙監司)로서 재상어사(災傷御史)가 되어 성주(星州)를 지나다가 송천(松川)에 터를 잡고 합천 야로(冶爐)로부터 이거(移居) 해서 살았으므로, 성주(星州) 입향조(入鄕祖)이며,

13世 선교랑(宣敎郎) 진잠현감(鎭岑縣監) 수겸(守謙)은 아들 다섯을 두셨는데 소(紹)의 후손은 성주(星州), 계(繼)의 후손은 경남 산청(山淸), 집(緝)의 후손은 대구 공산(公山), 륜(綸)의 후손은 영주(榮州), 회(繪) 후손은 칠곡군 오곡(梧谷)에 세거하고 있고 소(紹)이 손자(孫子) 덕규(德奎)의 후손은 성주 송천(松川), 응규(應奎)의 후손은 대구 매남(梅南), 희규(希奎)의 후손은 성주 고산정(高山亭)에 세거해 오고 있다,

13世 선교랑(宣敎郎) 진잠현감(鎭岑縣監) 수겸(守謙)은 아들 다섯을 두셨는데,

넷째 아들 륜(綸)의 후손이 영주, 봉화, 문경을 중심으로 거주하게 된 현령공파(縣令公派)의 파조가 되었다.

영주(榮州) 입향조(入鄕祖)인 송석충(宋碩忠)륜(綸)의 아들로 자()는 원로(元老), ()는 눌재(訥齋)이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1477(成宗8)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김굉필(金宏弼), 최부(崔溥) 등 당대의 명현들과 깊이 사귀었다.

1498(燕山君4)에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영주(榮州)로 남하하여 휴천(休川)에 세거하게 되니, 야성송씨의 영주(榮州) 입향조(入鄕祖)이다.

 

 

휴천(休川) : 현재의 경북 영주시 휴천리

조선시대 : 영천군 봉향면 휴천리

 

참고 : 冶城宋氏 縣令公派 야성춘추 2011년 봄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