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123

선조(先祖)의 숨결을 찾아서~ <2>

영주의 입향조(入鄕祖) 눌재선생(訥齋先生) 선생의 휘(諱)는 석충(碩忠), 자는 원로(元老), 호는 눌재(訥齋)로 단종 2년 (1454년)5월 28일 한성 호현방의 본집에서 태어나셨다. 1474년 상호군 희철(希哲)의 따님인 옥천 전씨(沃川 全氏)를 아내로 맞았고, 엄(儼), 의(儀), 간(侃), 칭(偁)의 네 아드님과 이준근(李埈根), 안배곤(安配坤), 권오기(權五紀)에 출가한 세 따님을 두셨다. 선생의 휘(諱)는 석충(碩忠), 자는 원로(元老), 호는 눌재(訥齋)로 단종 2년 (1454년)5월 28일 한성 호현방 (현 충무로)의 본집에서 태어나셨다. 1474년 상호군 희철(希哲)의 따님인 옥천 전씨(沃川 全氏)를 아내로 맞았고, 엄(儼), 의(儀), 간(侃), 칭(偁) 의 네 아드님과 이준근(李埈根)..

뿌리 2015.05.20

선조(先祖)의 숨결을 찾아서~ <1>

2015년 야성송씨 재구종친회 총회(冶城宋氏 在邱宗親會 總會)를 5월 17일 영주에서 가졌다. 선조(先祖)의 숨결을 찾아서~~~ 영주 현령공파 괴동 선영(先塋) 을 찾아 망묘단(望墓壇) 참배와 눌재 선조의 선영(先塋)을 참배했다. 망묘단(望墓壇) 현령공(縣令公)의 묘지 실전(失傳) 15세 눌재 선생이 무오사화(1498년)를 피해 영남의 영주땅으로 내려와 은둔생활을 하는 동안 “한성 금천 신림역 한유동”(漢城 黔川 新林驛 閒有洞)에 모셨던 현령공(縣令公) 내외분의, 묘소를 실전(失傳)하고 말았다. 이는 실로 애통한 일이 아니겠는가? 기록에 의하면 마지막 성묘로 선조 9년 (1576년, 만력 병자) 2월경 공의 증손인 매포(梅浦) 송복기(宋福基)께서 사마시를 보러갔다 성묘하고 운을 남긴 것이 있으니, 눌재선..

뿌리 2015.05.19

[스크랩] 백두산족이 건국한 은나라의 역사적인물

은 나라의 역사 인물 은나라를 건국한 탕왕湯王의 시조인 [설]이 순임금(제순유우)과 하나라의 우禹 임금때 벼슬을 하고 상商이라는 곳의 제후로 봉해진 가계 내력과 도읍의 이름을 따라 상商나라 라고도 하며, 고대 은나라를 포함하여 현재의 중국 땅에 있던 옛 중원 일부의 역사는 삼황(태호복희. 염제신농.황제헌원), 오제(소호금천. 전욱고양. 제곡고신. 제요도당. 제순유우), 하夏·은殷·주周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일설에는 은나라 이전의 삼황오제와 하나라를 전설적인 왕조로 취급하여 신화 정도로만 보는 견해도 있으나 동이족의 뿌리를 찾아보면 이들의 역사는 모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주나라까지의 중원 왕조의 흐름을 서술식으로 체계화 하면 다음과 같다(중원의 왕조는 하나라 이전까지는 세습 왕조가 아니라 덕..

뿌리 2015.05.16

백세각(百世閣)과 항일의적비

성주 백세각(百世閣) 항일의적비 격문 작성, 태극기 제작 독립운동산실. 백세각(百世閣)은 경북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에 있으며, 충숙공(忠肅公)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 할아버지가 건립한 것이며, 지금은 충숙공(忠肅公)파의 종택으로 3. 1운동 당시 태극기를 만들고 격문을 작성 배포하는 등 항일운동의 산실이기도 하다. 3. 1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공산(恭山)송준필 선생은 백세각(百世閣)에서 문회를 열어 “死生(사생)은 天命(천명)이다” “나라가 회복되면 죽더라도 사는 것이요, 나라가 회복되지 못하면 살더라도 죽는 것이다”라는 말로 통고국내문을 발기해 심산(心山)김창숙 선생과 합세 참찬(參贊)을 지낸 면우 곽종석 선생을 대표로 추대하고 파리장서를 작성했다. 영호남 유림 137인이 서명하고, 김창숙 선생이..

뿌리 2014.03.04

[스크랩] 매양서원(梅陽書院)

매양서원(梅陽書院) ❏소 재 지: 대구광역시 북구 매천동 ❏배향인물: 송원기(宋遠器) 송명기(宋命基) 송이석(宋履錫) ❏창건연도: 1831년(순조 31) ❏향 사 일: 매년 음력 12월 13일 연 혁 광해군 때 아헌 송원기(宋遠器)가 사간원으로 있으면서 광해군의 폭정을 간하였으나 이를 듣지 않자 자신의 호를 벙어리라는 뜻에서 아헌으로 고치고 지금의 매남동 지역으로 내려와 후진을 양성 하였다는 데서 매남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고, 매양서원이 매천초등학교 뒤쪽의 매천동에 창건된 것은 1692년(숙종 18) 이다. 아헌(啞軒) 송원기(宋遠器)를 기리고 선비가 모여 학문을 강론하기 위해 지어졌다. 1783년(정조 7)에는 사림들의 합의로 매헌(梅軒) 송명기(宋命基)와 남촌(南村) 송이석(宋履錫)을 배향하게 됐다...

뿌리 2014.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