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 21

근지집(根知集) 1

근지집(根知集) 1 이 근지집(根知集)은 야성송씨(冶城宋氏) 인의공파(引儀公派) 아헌공(啞軒公) 후손(後孫) 왜관지역에 사는 30世孫 수익 집안의 근지집(根知集)이다.                                                                          宋秀翼 編輯  삼강(三綱) 군 위 신 강(君爲臣綱)임금은 신하의 근본이 되고 부 위 자 강(父爲子綱)아버지는 자식의 근본이 되며부 위 부 강(夫爲婦綱)남편은 아내의 근본이 된다. 오륜(五倫)부 자 유 친(父子有親)아버지와 아들은 친함이 있어야 한다.군 신 유 의(君臣有義)임금과 신하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부 부 유 별(夫婦有別)남편과 아내는 분별이 있어야 한다.장 유 유 서(長幼有序)어른과 어린이는 차례가 있어..

오월의 코스모스~^^

오월의 코스모스~^^참으로 세상이 많이 변했나 보다.온 세상이 오염으로 만들어낸 기후 변화가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나 보다,학창시절 그 시절에는 가을 황금빛 들판 사이로 시골길에 가을바람타고 하늘 거리는 코스모스가 참으로 아름다웠는데~~~.오늘 아침 낙동강 강가를 운동 중에 오월 활짝 핀 코스모스를 만났다.계절이 무섭게 변해 가는가 보다~~ 2024년 5월 29일 아침~

풍경 2024.05.29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12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12 영주(榮州) 산천서당(山泉書堂) -1   영주에는 현령공파의 괴동제사가 묘역 주변에 있고, 문정동(목골) 일원에 산천서당이 남아 있다. 산천서당은 원래 성재산에 있던 산천서원으로, 조선중기의 문신이었던 오운선생 外 네 분이 배향되고 있었으나 무오사화 때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산천서당으로 재건 되었다. 지금의 산천서당은 본래 자리에서 이건 된 것이며 서원의 본 모습을 잃은 상태이지만 산천서원 현판과 더불어 중수 기문이 발견되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1) 오운(吳澐) : 1540(중종 35)~1617(광해군 9). 조선중기의 문신 · 의병장 본관은 고창. 자는 태원(太源), 호는 죽유(竹牖) 죽계(竹溪), 할아버지는 언의(彦毅) 이며, 아버지는..

뿌리 2024.05.24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11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11 영주(榮州) 괴동(槐洞) - 1 괴동재사(槐洞齋舍)아래 사진은 2015년 재구종친회 영주 방문시 사진입니다.   * 괴동제사(槐洞齋舍)의 기문(記文)  영지산(靈芝山)이 영천(榮川)의 남쪽에 우뚝 솟아서 기세가 웅장하게 높았는데 그 한 지맥이 서쪽으로 오다가 물가에 다다라서 멈춘 곳을 괴동(槐洞)이라 말하고 괴동(槐洞)의 서쪽에는 옛날 평은역(平恩驛)이 있었는데 지금은 옮겨졌다. 빼어난 산천(山川)의 경관이 두 손을 마주 잡고 읍(揖)을 하는 듯이 둘러 않았으니 실로 영천의 빼어난 곳이다. 처음 우리 선조(先祖)이신 눌재공(訥齋公)께서 한훤당(寒暄堂) 김선생(金先生)과 금남(錦南) 최선생(崔先生)과 더불어 정지교부계(情志交孚契)를 맺었으니 김선생이 계첩(契..

뿌리 2024.05.23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10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10 눌옹선생유사(訥翁先生遺事) - 5 7. 계회도지(契會圖識)  계회도(契會圖) 기문(記文) 대체로 사람의 가정과 뜻은 반드시 선(善)한 사람과 선한 사람이 서로 의기가 투합하는 것이니 어진 사람과 서로 의기가 투합하다면 이 사람도 역시 어진 사람일 따름이다. 지금 이 계회도(契會圖)를 보건대 한훤당(寒暄堂) 김선생(金先生)이 맨 앞에 제목을 하여 그 그림의 이름을 정지교부(情志交孚)>라 했고 그 말미에 쓰기를 도(道)가 서로 같다.>라고 했으니 네 분 현자(賢者)의 도(도)가 한훤당(寒暄堂)과 더불어 의기가 서로 투합했다는 것을 알만할 따름이다. 그 도(道)가 현자(賢者)에게 서로 투합했다는 것은 현자(賢者)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 사람도 죽었고 세상도..

뿌리 2024.05.23

금계국

금계국 금계국이 낙동강변에 지천으로 피었다.2024년 5월 18일 꽃말 : 기쁨,  전설 :​옛날에 황금으로 만들어진 금 닭을 찾아 먹으면 온 세계를얻는다는 소문이 있었데요.​그래서 사람들은 금닭을 찾으러 여기저기 헤매이고 다녔데요그렇게 다니다가 금닭의 벼슬과 비슷하게 생긴 노오란 꽃봉오리를 보고 이게 금닭이구나!했답니다.​사람들은 그때부터이 노오란 꽃을 '금계국' 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9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9 눌옹선생유사(訥翁先生遺事) - 4 정지교부계회도(情志交孚契會圖)  생원인 김굉필(金宏弼) 갑술년(甲戌年 = 1454年)생이고 자(字)는 대유(大猷)이며 본관은 서흥(瑞興)이다. 부친은 어모장군으로 충좌위(忠佐衛) 호군(護軍)을 지낸 분으로 이름은 유(紐)이다. 생원인 송석충(宋碩忠)은 갑술년(甲戌年 = 1454年)생이고 자(字)는 원로(元老)이며 본관은 야로(冶罏)이다.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지낸 분으로 이름은 윤(綸)이다. 진사인 최부(崔府)는 갑술년(甲戌年 = 1454年)생이고 자(字)는 언박(彦博)이며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부친은 진사를 지낸 분으로 이름은 택(澤)이다. 진사인 박담손(朴聃孫)은 을해년(乙亥年 = 14..

뿌리 2024.05.20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8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8 눌옹선생유사(訥翁先生遺事) - 3 눌옹선생유사(訥翁先生遺事)는 영주에 처음 입향(입향)한 눌옹선생에 대한 기록으로서 원본은 1812(계유)년에, 국역본은 1990(경자)년에 출간되었다. 본관(본관)을 통해 가급적 소상하게 전하고다 한다.  4. 묘갈(墓碣) 무덤 앞에 세우는 묘비의 한 가지로 사적(事績)을 싣는 문체가 신도비와  같음 공(公)의 휘(諱)는 석충(碩忠)이요. 자(字)는 원노(元老)로 합천(陜川) 야성인(冶城人)이다. 증조(曾祖)는 판결사(判決事 = 정3품)를 지낸 천우(千祐)이고 조부(祖父)는 현감(縣監 = 종6품)을 지낸 수겸(守謙)이며 고(考)는 현령(縣令 = 종5품)을 지낸 륜(綸)으로 영의정(領議政 = 정1품)을 지낸 한창(韓昌)의 따님..

뿌리 2024.05.20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7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7 눌옹선생유사(訥翁先生遺事)-2  2. 유사(유사) 종질(從姪) 야계 희규(倻溪 希奎)가 찬 하다.  희규(希奎)가 조용히 생각해보니 사람이 훈구대신(勳舊大臣)의 친척으로 태어나서 벼슬을 단념하고 또 서울에서 자라나 영달(榮達)의 꿈을 버리고 초연히 멀리 떠나서 스스로 옛 일민(逸民)처럼 된 것은 이것이 바로 불길(不吉)한 징조(徵兆)가 예견(豫見)되면 하루도 더 머물지 않고 떠난다는 의(義)로움이 있는 것이니 산림처사(山林處士)가 세상을 과감히 잊어버리는 따위가 아니라 오직 명철(名哲)한 은둔군자(隱遁君子)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니 아마 우리 종숙부(從叔父)이신 눌옹선생(訥翁先生)이 그런 사람에 가깝다고 하겠다. 선생의 성(姓)은 송(宋)이며 휘(諱)는 ..

뿌리 2024.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