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계국 금계국 금계국이 낙동강변에 지천으로 피었다.2024년 5월 18일 꽃말 : 기쁨, 전설 :옛날에 황금으로 만들어진 금 닭을 찾아 먹으면 온 세계를얻는다는 소문이 있었데요.그래서 사람들은 금닭을 찾으러 여기저기 헤매이고 다녔데요그렇게 다니다가 금닭의 벼슬과 비슷하게 생긴 노오란 꽃봉오리를 보고 이게 금닭이구나!했답니다.사람들은 그때부터이 노오란 꽃을 '금계국' 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야생화~ 2 <꽃말,유래,전설> 2024.05.20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9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9 눌옹선생유사(訥翁先生遺事) - 4 정지교부계회도(情志交孚契會圖) 생원인 김굉필(金宏弼) 갑술년(甲戌年 = 1454年)생이고 자(字)는 대유(大猷)이며 본관은 서흥(瑞興)이다. 부친은 어모장군으로 충좌위(忠佐衛) 호군(護軍)을 지낸 분으로 이름은 유(紐)이다. 생원인 송석충(宋碩忠)은 갑술년(甲戌年 = 1454年)생이고 자(字)는 원로(元老)이며 본관은 야로(冶罏)이다.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지낸 분으로 이름은 윤(綸)이다. 진사인 최부(崔府)는 갑술년(甲戌年 = 1454年)생이고 자(字)는 언박(彦博)이며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부친은 진사를 지낸 분으로 이름은 택(澤)이다. 진사인 박담손(朴聃孫)은 을해년(乙亥年 = 14.. 뿌리 2024.05.20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8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8 눌옹선생유사(訥翁先生遺事) - 3 눌옹선생유사(訥翁先生遺事)는 영주에 처음 입향(입향)한 눌옹선생에 대한 기록으로서 원본은 1812(계유)년에, 국역본은 1990(경자)년에 출간되었다. 본관(본관)을 통해 가급적 소상하게 전하고다 한다. 4. 묘갈(墓碣) 무덤 앞에 세우는 묘비의 한 가지로 사적(事績)을 싣는 문체가 신도비와 같음 공(公)의 휘(諱)는 석충(碩忠)이요. 자(字)는 원노(元老)로 합천(陜川) 야성인(冶城人)이다. 증조(曾祖)는 판결사(判決事 = 정3품)를 지낸 천우(千祐)이고 조부(祖父)는 현감(縣監 = 종6품)을 지낸 수겸(守謙)이며 고(考)는 현령(縣令 = 종5품)을 지낸 륜(綸)으로 영의정(領議政 = 정1품)을 지낸 한창(韓昌)의 따님.. 뿌리 2024.05.20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7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7 눌옹선생유사(訥翁先生遺事)-2 2. 유사(유사) 종질(從姪) 야계 희규(倻溪 希奎)가 찬 하다. 희규(希奎)가 조용히 생각해보니 사람이 훈구대신(勳舊大臣)의 친척으로 태어나서 벼슬을 단념하고 또 서울에서 자라나 영달(榮達)의 꿈을 버리고 초연히 멀리 떠나서 스스로 옛 일민(逸民)처럼 된 것은 이것이 바로 불길(不吉)한 징조(徵兆)가 예견(豫見)되면 하루도 더 머물지 않고 떠난다는 의(義)로움이 있는 것이니 산림처사(山林處士)가 세상을 과감히 잊어버리는 따위가 아니라 오직 명철(名哲)한 은둔군자(隱遁君子)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니 아마 우리 종숙부(從叔父)이신 눌옹선생(訥翁先生)이 그런 사람에 가깝다고 하겠다. 선생의 성(姓)은 송(宋)이며 휘(諱)는 .. 뿌리 2024.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