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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9

공간(空間) 2024. 5. 20. 20:21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9

 

눌옹선생유사(訥翁先生遺事) - 4

 

정지교부계회도(情志交孚契會圖)

 

 

생원인 김굉필(金宏弼) 갑술년(甲戌年 = 1454)생이고 자()는 대유(大猷)이며 본관은 서흥(瑞興)이다. 부친은 어모장군으로 충좌위(忠佐衛) 호군(護軍)을 지낸 분으로 이름은 유()이다.

 

생원인 송석충(宋碩忠)은 갑술년(甲戌年 = 1454)생이고 자()는 원로(元老)이며 본관은 야로(冶罏)이다.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지낸 분으로 이름은 윤()이다.

 

진사인 최부(崔府)는 갑술년(甲戌年 = 1454)생이고 자()는 언박(彦博)이며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부친은 진사를 지낸 분으로 이름은 택()이다.

 

진사인 박담손(朴聃孫)은 을해년(乙亥年 = 1455)생이고 자()는 이수(頤叟)이며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부친은 봉열대부로 교하현감(交河縣監)을 지낸 분으로 이름은 수림(秀林)이다.

 

진사인 신희연(申希演)은 을해년(乙亥年 = 1455)생이고 자()는 원량(源亮)이며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부친은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충좌위(忠佐衛) 호군(護軍)을 지낸 분으로 이름은 환()이다.

()은 나이가 같고 도()도 같아 뜻을 서로 믿고, 경자년(庚子年 = 1480) 6월 초 6일에 대유(大猷)의 집에서 이 계를 맺는다.

 

부의(賻儀) : 부모상을 당했을 때는 베 한 필로 하고, 처부모와 처상에는 종이 5권으로 한다.

1) 색장(色掌) : 돌려가면서 맡는다.

강신(講信) : 춘추로 색장이 준비한다.

 

성화(成化 = 명나라 憲宗의 연호) 16경자년(庚子年) 6월 초 6일에 선생은 최진사 부(崔進士 溥), 송생원 석충(宋生員 碩忠), 박진사 담손(朴進士 聃孫), 신생원 희연(申生員 希演)등과 호현방(好賢坊) 본제(本第)에서 계회(契會)를 하였다. 계첩에는 나이도 같고 도()도 같아 정과 뜻을 서로 믿는다.”라고 하였다. 경현록(景賢錄)에서 나온 말이다. 기록 원본을 보면 선생의 좌석 서열을 최()선생의 밑에 쓰고 신()선생을 생원(生員)으로 써놓은 것을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당연히 도본(圖本)을 고쳐야 될 것으로 안다.

 

(), 색장(色掌) : 성균관(成均館), 향교(鄕校), 사학(四學)등에 기거하던 임원이나 계()의 유사(有司)

 

계회영정(契會影幀)

 

오른쪽의 영정(影幀)이 누차 사화(士禍)와 병란(兵亂)을 거쳤으나 오늘까지 잘 전해져서 실로 한훤(寒暄) 선생의 화병(畫屛)에 있는 것과 흡사할 뿐 아니라 백세(百世)의 후에 그 전말(顚末)을 자세히 기록해 둔다.

이 영정에 그려진 5선생의 계회에 제택(第宅) 및 화목(花木)을 보면 병란과 사화를 겪은 어제 일처럼 완연하다. 이 계회도본(契會圖本)에는 대유(大猷)의 본제(本第)에서 이 계()를 맺어 춘추로 강신(講信)하였다.”라고 하면서 그 일자가 모두 경자(庚子)66일로 되어있으나, 이곳에는 신축(신축)88일로 되어있으니 아마 경자(庚子)66일은 당초 계회(契會)로 맺던 날이고 신축(辛丑)88일은 다음해 가을 강신(講信)하던 때가 아닌가 여겨진다. 영정 밑에 있는 휘함(諱銜)은 도본(圖本)과 같이 기재되어 있으므로 여기에는 다시 기록하지 않는다.

 

(), 영정(影幀) : 화상을 그린 족자, 영상(影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