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10
눌옹선생유사(訥翁先生遺事) - 5
7. 계회도지(契會圖識)
계회도(契會圖) 기문(記文)
대체로 사람의 가정과 뜻은 반드시 선(善)한 사람과 선한 사람이 서로 의기가 투합하는 것이니 어진 사람과 서로 의기가 투합하다면 이 사람도 역시 어진 사람일 따름이다. 지금 이 계회도(契會圖)를 보건대 한훤당(寒暄堂) 김선생(金先生)이 맨 앞에 제목을 하여 그 그림의 이름을 <정지교부(情志交孚)>라 했고 그 말미에 쓰기를 <도(道)가 서로 같다.>라고 했으니 네 분 현자(賢者)의 도(도)가 한훤당(寒暄堂)과 더불어 의기가 서로 투합했다는 것을 알만할 따름이다. 그 도(道)가 현자(賢者)에게 서로 투합했다는 것은 현자(賢者)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 사람도 죽었고 세상도 멀어졌는데 계회도가 송씨(宋氏)의 집에 소장된 지 100여년이 되어서 훼손되기도 하고 더렵혀지기도 한지 오래되었는데 빼어난 송천기(宋天機) 재사(才士)는 곧 송생원(宋生員)의 후예로서 이에 마음에 느끼는 바가 있어서 겉모양을 꾸며서 그 그림을 새롭게 했으니 대체로 선조의 유적이 장차 그 실전(失傳)될까 두려워하여 그를 오래 전해지도록 계획한 것이다. 옛사람의 먹 자취를 어루만지면 완연하게 어제의 일과 같을 것이니 이 그림을 본 사람이라면 그 한스럽게 선생의 유풍(遺風)을 그리워 사모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하물며 계회도를 이미 100년의 뒤에 거듭 새롭게 했다면 이 뒤로 100년 1000년이 지난들 그를 새롭게 할 사람이 없겠는가? 이 그림이 무궁하도록 전해지고 없어지지 않을 것은 의심할 것 없다. 선대(先代)의 유학자가 말하기를 <멀어진 것은 사람들이 소홀히 하기가 쉽다.>라고 했지만 그를 추상하고 그를 후대할 수 있음이 도리이다.
병신(丙申)년 4월 하순에 풍산(豐山) 김응조(金應祖) 삼가 기록하다.
주(註) :
김응조(金應祖 = 1587~1667) 조선 현종(顯宗) 때의 문신, 자는 효징(孝徵), 호는 학사(鶴沙), 본관은 풍산(豐山), 장현광(張顯光)의 문인,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정랑, 선산부사(善山府使)를 엮임하고 동부승지(同副承旨), 공조참의를 거쳐 한성부 좌윤을 지냈다. 안동의 물계서원(勿溪書院) 영주의 의산서원(義山書院)에 제향 되었다.
8. 만김한훤당굉필(輓金寒暄堂宏弼)
김한훤당(金寒暄堂) 굉필(宏弼)(1)에게 한 만사.
夫子瑞興之子孫 부자(夫子)는 서흥김씨(瑞興金氏)의 자손으로서
英英風味更溫溫 영걸(英傑)스런 그 기풍에 다시 부드러운 심성으로
行餘小學生平熟 틈만 나면 소학(小學) 펴서 평생토록 익혔으며
向上眞工老去敦 위를 향하는 참된 공부는 늙어도 더욱 돈독했네.
崑火俱焚哀玉美 큰 산(山)불에 함께 탄 구슬 아름다움이 애처롭고
谷飇多折歎蘭 산골짜기 회오리바람에 부러진 난초 향기 한탄일세.
退齋分手持言贈 서재(書齋)를 물러나면서 내 마음속 말 주었는데
何不追思炯戒存 명백한 경계가 있는 것을 왜 미루어 생각 못 했는가?
주(註) :
(1) 김굉필(金宏弼 = 1454~1504) 연산군(燕山君) 때의 학자.
자(字)는 대유(大猷), 호는 한훤당(寒暄堂), 시호는 문경(文敬), 본관은 서흥(瑞興). 김종직(金宗直)의 문인. 성종(成宗) 25년에 행의(行誼)로 천거되어 남부참봉(南部參奉)과 주부(主簿), 감찰(監察)을 거쳐 연산군 2년에 형조좌랑(刑曹佐郎)이 되었다. 이듬해 무오사화(戊午士禍 1498년) 때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라 하여 희천(熙川)에 유배되었고, 순천(順天)에 이배(移配) 되었다가 갑자사화(甲子士禍 1504년) 때 사사(賜死)되었다. 육경(六經)과 성리학에 통달하였으며, 조광조(趙光祖), 이장곤(李長坤), 김안국(金安國) 등 학자를 배출하였다. 중종(中宗) 때 우의정(右議政)에 추증되고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한훤당집(寒暄堂集), 경현록(景賢錄)이 있다. 눌재선생(訥齋先生)과 동문수학하고 오현(五賢)이 맺은 정지교부계회(情志交孚契會) 도첩(圖帖)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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