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11
영주(榮州) 괴동(槐洞) - 1
괴동재사(槐洞齋舍)
아래 사진은 2015년 재구종친회 영주 방문시 사진입니다.
* 괴동제사(槐洞齋舍)의 기문(記文)
영지산(靈芝山)이 영천(榮川)의 남쪽에 우뚝 솟아서 기세가 웅장하게 높았는데 그 한 지맥이 서쪽으로 오다가 물가에 다다라서 멈춘 곳을 괴동(槐洞)이라 말하고 괴동(槐洞)의 서쪽에는 옛날 평은역(平恩驛)이 있었는데 지금은 옮겨졌다.
빼어난 산천(山川)의 경관이 두 손을 마주 잡고 읍(揖)을 하는 듯이 둘러 않았으니 실로 영천의 빼어난 곳이다. 처음 우리 선조(先祖)이신 눌재공(訥齋公)께서 한훤당(寒暄堂) 김선생(金先生)과 금남(錦南) 최선생(崔先生)과 더불어 정지교부계(情志交孚契)를 맺었으니 김선생이 계첩(契帖)에 쓰시기를 “나이도 서로 같고 도(道)도 서로 같다.”라고 썼으니 서로 부합한 정분을 백세(百世)의 뒤에도 상상할 수 있다.
세상을 떠나심에 이르러 괴동(槐洞)에 장사 지낸 지 지금 200여년이 되는데 내외(內外)의 후손이 서울과 시골에 두루 널리 가득하여 생원(生員) 진사(進士)에 합격하고 대과(大科)에 급제하여 묘(墓) 앞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 전후(前後)를 통하여 무려(無慮) 30여명이나 되니 우리 선조께서 음덕(蔭德)을 쌓으심이 후예(後裔)에게 미친것임을 또한 징험할 수 있다.
항상 3월 상순(上旬)과 시월(十月) 상순에 재사를 행할 때는 자손들이 모두 이르러서 재사(齋舍)가 좁고 협착하여 병통으로 여겼는데 조선 숙종(肅宗) 42년 병신(丙申) (서기17016)에 비로서 동족이 모여서 제실(齋室)을 넓히기로 의논하여 증족대부(曾族大父)이신 세건(世楗)씨가 그 일을 주관하여 재목(材木)을 모으고 기와를 사들여서 먼저 재실(齋室) 여섯 칸과 동쪽 서쪽의 익실(翼室 = 좌우에 있는 방) 각각 세 칸을 창건했으나 유숙(留宿)함에 군색함은 오히려 다시 전과 같았다. 그 뒤로 몇 년 만에 또 서루(西樓) 다섯 칸을 세웠고, 또 몇 년 뒤에 족대부(族大父) 응현(應賢)씨 (世楗씨의 조카)가 선대(先代)의 뜻을 능히 계승하여 남루(南樓) 세 칸을 설치하니 모두가 20여 칸이다. 이리하여 창고의 저장과 주방 등이 하나도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었으니 진실로 우리 족대부(族大父) 양대(兩代) 분이 선조를 사모하는 정성은 그 훌륭함을 독차지했다고 말할 수 있다.
중앙에 해당되는 도리 다섯의 세 칸은 마루와 행랑방을 만들어서 제사를 받들게 하여 그 편액(扁額)을 영모(永摹)라 했고 그 동쪽의 정결한 방은 재실(齋室)을 만들었다. 북쪽의 여섯 칸은 제사를 맡아 관리하는 곳이 되었으며 서루(西樓)와 남루(南樓) 모두 아홉 칸은 편액(扁額)을 추원(追遠)이라 하고 조육(俎肉)을 받는 서열(序列)의 자리이니 대체로 질서가 정연했다.
제수(祭需)를 받치는 시기에 미치면 자손들이 해마다 번갈아 교체 하였으니 아마도 고례(古禮)에 종자(宗子)와 지자(支子)가 모두 제사를 한다는 글을 취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 재사(齋舍)의 제도는 질박하면서도 간략했다. 그러나 봉선(奉先) 함에는 물질이 사치함이 귀중한 것이 아니요. 세업(世業)을 계승함에도 매앙 종말에 게을러짐이 근심이어서 서리와 이슬을 밟으면 마음이 슬퍼지고 풍수지탄(風樹之嘆)을 들으면 회포가 슬퍼져서 신중하면서도 쉬지 않고 노력하여 마치 그 기회를 잃을까 두려워한다면 이러한 떼에 그 시작이 쉽지 않음을 생각하여 영구히 전할 계획을 하는 것이 어떠한가?
시경(詩經)에 말하기를 “너의 조상을 욕되게 하지 말고 그 덕(德)을 닦으라” 했고 또 말하기를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면서 낳아주신 부모를 욕되게 말아야지”라고 했으니 모든 우리 선조의 자손들은 진실로 시인(詩人)의 뜻을 체득할 수 있어서 각각 수립(樹立)할 바를 생각하고 문호(門戶)의 수치가 되지 말도록 한다면 세업(世業)을 보존하고 재사를 지켜나가는 도리가 벗어나지 않을 것이며 그 역시 그렇게 함이 옳을 것이다.
縣令公 16代孫 홍준(鴻俊) 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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