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星州) 고산정(高山亭) - 16
고산정(高山亭)과 원불교(圓佛敎)
원불교 2대 종법사인 정산(鼎山) 송규(宋奎, 1900~1962) 종사는 야성송씨로 시조(始祖) 송맹영(宋孟英)의 29세 손(孫)이며 고산정 입향조 충숙공(忠肅公) 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의 14세 손(孫)이다.
정산종사는 조상 대대로 세거해 왔던 고산정에서 고개 너머 10 여리 떨어진 소성동에서 태어났는데 부친인 구산 송벽조(호적명 : 寅驥)가 결혼 후 고산정에서 소성동으로 이사를 하였다.
정산종사는 어려서부터 천품이 총명하고 기상이 화청(和淸) 하였으며 사물을 범연히 간과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기를 좋아하였으며 한번 하기로 한 일은 기어이 실행하는 결단력이 있었다.
7세 때부터 가문의 전통에 의하여 조부의 사숙(私塾)에서 한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였으며 이어 재를 넘어 십리 길을 내왕하며 고산정 백세각을 찾아 당시 영남의 거유(巨儒)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 선생에게 유학을 배웠는데 10세에 이르러서는 유가의 경서를 대강 통독하였다. 그러나 이에 만족치 못하고 옛 성현들의 사적을 즐겨 읽으며 장차 천하의 큰 공부로 천하의 큰 주인이 되어 보리라 하고 발심을 하게 되며 훌륭한 이인(異人)을 만나 나의 뜻을 이루리라 마음먹고 명산거령(名山巨嶺) 찾아다니고 정좌수양(靜坐修養)을 하며 “내가 전라도를 가야 내 만날 이를 만나고 공부를 성취하리라”하고 전라도로 가서 소태산 대종사를 만나 약관 19세에 9인 제자 중 수위단 중앙에 서임되며 교서편찬, 총부건설에 심혈을 기울였고 소태산 대종사가 열반한 뒤 종통을 계승하여 2대 종법사에 취임하고 국가와 민족이 나아갈 바 바른길을 제시하는 건국론(建國論)을 저술하였으며, 오늘날 원광대학교의 전신인 유일학림(唯一學林)을 설립하였으며 『불법연구회』로 불러온 임시 교명을 원불교로 선포하였고 동원도리(同源道理), 동기연계(同氣連契), 동척사업(同拓事業)의 삼동윤리(三同倫理)를 설하는 등 종통 계승자로서 교단 창업에 큰 공적을 남겼다.
정산종사의 부친인 구산 송벽조(호적명 : 寅驥)는 1939년 일본왕(日本王)에게 우리 민족 학대에 대한 진정서를 냈다가 불경죄(不敬罪)로 광주 형무소에서 1년 6개월 옥고를 치른 애국자이다. <송인기는 고산정 송한익씨의 당숙부입니다!!>
정산종사의 저술로는 『정산종사법어』등이 있다.
초전면 소성리 구성마을에 정산종사의 탄생가와 이웃 마을 박실구도성장지에 구도비와 대각전이 있어 원불교의 성지(聖地)이며 이곳 고산정은 정산종사의 선대 세거지이며 어릴 적 유학을 배운 곳으로 가문의 전통과 뿌리를 헤아려 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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