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8

공간(空間) 2024. 5. 20. 20:16

야성송씨(冶城宋氏) 현령공파(縣令公派) - 8

 

눌옹선생유사(訥翁先生遺事) - 3

 

눌옹선생유사(訥翁先生遺事)는 영주에 처음 입향(입향)한 눌옹선생에 대한 기록으로서 원본은 1812(계유)년에, 국역본은 1990(경자)년에 출간되었다. 본관(본관)을 통해 가급적 소상하게 전하고다 한다.

 

 

4. 묘갈(墓碣)

무덤 앞에 세우는 묘비의 한 가지로 사적(事績)을 싣는 문체가 신도비와  같음

 

()의 휘()는 석충(碩忠)이요. ()는 원노(元老)로 합천(陜川) 야성인(冶城人)이다. 증조(曾祖)는 판결사(判決事 = 3)를 지낸 천우(千祐)이고 조부(祖父)는 현감(縣監 = 6)을 지낸 수겸(守謙)이며 고()는 현령(縣令 = 5)을 지낸 륜()으로 영의정(領議政 = 1)을 지낸 한창(韓昌)의 따님에게 장가를 들어 경태(景泰 = 명나라 景帝의 연호) 갑술년(甲戌年 = 1454)에 공을 낳았다. ()24()때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있을 때에 명사(名士)인 김굉필(金宏弼), 최부(崔溥)등과 정지교부계(情志交孚契)를 맺고 고관과 이름난 선비들 사이에 한창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나 그는 아깝게도 중풍이 들어 세상에 명예를 떨치지 못하고 영천 봉향면(榮川奉香面)으로 이사하여 서사(書史)를 즐기며 가난하게 살다가 세상을 마쳤다. 그는 가정(嘉靖 = 명나라 世宗의 연호) 갑신년(甲申年 = 1524)에 향녕 71()로 작고하여 살고 있던 본군 남쪽 30리의 거리인 평은 역(平恩驛) 동쪽산 장지에 잠들어 계신다. 그리고 공()은 옥천전씨(沃川全氏)로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지낸 희철(希哲)의 따님에게 장가를 들었는데 이 분은 봉례랑(奉禮郎 = 4)을 지낸 예()의 손녀이며 전서(典書)를 지낸 광원(光遠)의 증손녀이고, 전적(典籍 = 6)을 지낸 문손관(文孫貫)의 외손녀이다. ()이 신병으로 가사를 불고(不顧)하고 있을 때 모든 집안일과 손님 접대하는 내조(內助)로 감당하였으며 효성과 자애로운 덕()을 갖추어 그 고을 부녀들에게 모범이 되기도 하였다. 이 분은 천순(天順 = 명나라 영종의 연호) 무인(戊寅 = 1458)에 태어나서 공()이 작고한 5년 후인 무자년(戊子年 = 1529)71세로 작고하여 공()의 묘역 좌측에 부장(祔葬 = 부부의 묘를 나란히 합장하는 일)하였다. 4()중에 엄()80세의 고령으로 당상관(堂上官 = 정삼품이상) 자급(資級)에 해당하는 은전(恩典)을 받았고 의()는 참봉(參奉) 지냈으며 간()은 내금위(內禁衛)에 봉직하였고, ()은 충순위(忠順衛)에 봉직했다. 그리고 3() 중 큰사위 이준근(李峻根)은 참봉을 지냈으며, 둘째사위 안배곤(安配坤)은 충순위(忠順衛)에 봉직했고, 셋째사위 권오기(權五紀)는 문과에 급제하여 좌통례(左通禮 = 3)를 지냈다. 그리고 엄()의 아들 복숭(福崇)은 훈도(訓導)를 지냈으며, 덕숭(德崇)은 우후(虞候 = 3)을 지냈고, 따님은 권서일(權瑞日),

금응남(琴應南), 이홍제(李弘濟), 생원인 김윤흠(金允欽) 등에게 출가하였다. ()의 아드님은 복령(福齡), 복남(福男), 복임(福稔), 복기(福基), 복원(福源)이며, 따님은 권종경(權宗景)에게 출가하였다.

()의 아드님은 복영(福榮), 복항(福恒), 복유(福緌)이며, 따님은 진사인 김정헌(金廷憲), 권재흥(權載興), 신여공(申汝恭)등에게 출가하고, ()의 아드님은 복견(福堅 = 또는 복인(福仁)이며, 따님은 한우(韓佑)에게 출가하였다. 이준근(李峻根)의 아드님은 은()이며 안배곤(安配坤)의 아드님은 위()이고 따님은 찰방(察訪 = 6)인 박승건(朴承健)에게 출가하였으며, 충순위(忠順衛)에 봉직했고, 권오기(權五紀)의 아드님은 찰방(察訪)을 지낸 우()이고 따님은 통정대부로 목사(牧使)를 지낸 박승임(朴承任)에게 출가하였으며, 복숭(福崇)의 장남은 침()으로, 그밖에 내외손(內外孫) 및 증손(曾孫)과 현손(玄孫)은 어려서 성취하지 못한 사람이 약 50여명이나 된다. ()의 윗대()에는 외아들로 가업을 이어온 지 5~6()나 되지만 공()에 이르러 그 후예가 이렇게 많아졌으니 후한 덕을 쌓지 않고서야 어찌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의 자손 된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아 노력하기 바란다.

 

() : 융경(융경 = 명나라 목종의 연호) 22(1567) 8

            통정대부 진주목사(진주목사)인 박승임(朴承任)이 지음

 

박승임(朴承任 1517~1586)

조선 중기 명종 · 선조 때의 문신이며,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보(重甫),

호는 소고(嘯皐)로서,

눌재(訥齋) 선조의 외손서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