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星州) 고산정(高山亭) - 6
고산정(高山亭)의 유적(遺蹟) - 2
● 봉강서원(鳳岡書院)
이 서원은 정조 10년(1786)에 고산정 북쪽 명곡(椧谷) 아래에 세워 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 선생의 위판을 봉안하고 신연(新淵) 송사이(宋師頤) 선생을 병향하였으며 원액(院額)은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이 섰다.
헌종 4년(1838) 지반이 기울고 무너짐으로 손곡(遜谷) 야계선생 분암(墳庵)이 있는 곳으로 이건 했다. 분암은 선생이 1554년 정사(精舍)를 세우고 모년(暮年)의 유식소(遊息所)로 삼았으며 손자(孫子) 성암(省庵) 송유경(宋惟敬)이 1556년 뜻있는 학도들을 모아 강습(講習)하게 하던 곳으로 승도(僧徒)로 하여금 수호토록 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고, 광해 11년(1619) 야계선생 현손(玄孫) 사전(砂田) 송시영(宋時詠)이 15칸을 중건하였다.
이건 때에 정사(正祠)와 전사청(典祀廳)은 별도로 세우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었으며 매년 춘추에 사림과 자손이 원사와 묘소에 향사를 해오다가 고종 6년(1869) 서원훼철령(書院毁撤令)이 내려 철거되자 사림들이 그곳에 서당을 세워 봉강서당이라 하여 존모(尊慕)하고 독서 하는 곳으로 하였다.
당호를 흥효(興孝)라 하고 동실은 돈륜(惇倫), 서실은 낙영(樂英)이라 하였으니 이는 충의와 도덕에 근본을 해서 진실 되게 돈륜(惇倫)으로 후풍(後風)을 얻고 낙육(樂育)으로 정도(正道)를 얻어 마음의 사심을 이기고 예(禮)를 회복토록 하였다.
이곳 손동의 경치는 산이 반달(半月)을 안으면 달그림자 지는 것은 고기가 뛰어올라 한당(寒塘)에 떨어지는 모양이며 삼성(三星)이 차례로 배열되어 그 빛을 발하면 산은 마치 호랑이 등에 걸터앉은 것과 같이 지덕(地德)으로 한 고을을 편안하게 하는 명산의 기상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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