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星州) 고산정(高山亭) - 8
고산정(高山亭)의 유적(遺蹟) - 4
● 정려각(旌閭閣)
야계(倻계) 송희규(宋希奎 : 1494-1558) 선생의 효행이 지극함을 당시 경상도 관찰사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이 장계를 올려 중종 38년(1543년) 9월 28일 정려가 내려지고 노포동(蘆浦洞)에 정려각을 세웠으나 선조 32년(1599년)에 동산(東山) 모암(帽巖) 아래로 이건 하였다.
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 선생의 본관(本貫)은 야성(冶城)이며 자(字)는 천장(天章), 호(號)는 야계 또는 야계산옹(倻溪散翁)이라 하였으며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로 있을 때 세도가 윤원형을 탄핵하다가 전라도 고산(高山)(현재의 전라북도 완주군)으로 귀양을 간 을사명헌(乙巳名賢)으로 사면된 후 고향으로 돌아와 고산리에 백세각(百世閣)을 짓고 다시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학문과 시주(詩酒)를 즐기며 유유자적(悠悠自適)하였으며 사후에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증직(贈職)되고 충숙(忠肅)이란 시호(諡號)가 하사 되었다.
참고 : 조선왕조실록에 중종 38년(1543) 9월 3일 경상도 관찰사 이언적(李彦迪)이 야계 송희규의 효우가 지극함을 올려 9월 28일 임금께서 윤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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