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漆谷) 매남(梅南) - 1
칠곡(漆谷) 매남(梅南) 입향(入鄕)의 유래(由來)
매남(梅南)은 야성송씨(冶城宋氏) 인의공파(引儀公派) 아헌공(啞軒公) 손의 집성촌(集姓村)이다.
우리 야성송씨(冶城宋氏)의 기원은 신라말(新羅末), 당나라에서 귀화한 송주은(宋柱殷)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참고 : 1) 야성(冶城) : 야성은 지금의 합천군 야로면을 가리킨다. 고려 때 목종 (穆宗)
께서 야로(冶爐)가 상스럽지 못하다 하여 로(爐)를 성(城)으로 고치게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가끔 야로송씨(冶爐宋氏)로 기록된 곳도 있다.
2) 송주은(宋柱殷) : 당나라 때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역임하였고 당나라가
멸망(滅亡)한 서기 907년을 전후한 신라말(新羅末)에 망명하여 온 것으로
여산세계(礪山世系)등 상세(上世)의 계보(系譜)에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병화(兵火)와 관리 소홀로 인하여 문헌(文獻) 기록이 실전되어 다만
구전으로만 전할 뿐이어서 자세히 고증(考證)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시조(始祖)인 휘(諱) 송맹영(宋孟英)이 고려 목종(穆宗)조에 간의대부(諫議大夫) 총부의랑(摠部議郞)을 역임하여 야성군(冶城君)의 봉호(封號)와 식채(食采)를 받았다. 이로 인하여 야성(冶城)을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다.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족보(族譜) 후지(後識)에 “우리나라의 큰 성씨는 대부분 영남에서 나왔고 그 가운데 화산권씨(花山權氏)와 문소김씨(聞韶金氏)가 가장 두드러지고 역사 또한 장구한데, 오직 우리 야성송씨(冶城宋氏)만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고, 배위(配位)와 비위(妣位)의 성적(姓籍)이 기록되어 지금 수십 여대를 지나서도 밝게 전해질 수 있게 된데 이르러서는 권(權)씨와 김(金)씨 에게도 자못 혹 그러함이 있지 않다”라고 하였으니, 우리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역사가 자세하고 오래되었음이 헛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참고 : 1) 족보후지(族譜後識) : 我國大姓 多出嶺南 而花山權氏 聞韶金氏 最著而長
性我冶爐之宋 興之相埒 至如配妣姓籍 世世幷錄 今歷數十餘代而 昭然可傳
者 則權金兩氏 殆或未之有也 《梅軒集》
2) 화산권씨(花山權氏) : 안동권씨(安東權氏)를 말한다.
3) 문소김씨(聞韶金氏) :의성김씨(義城金氏)를 말한다.
4) 시조공(始祖公) 이하 9世 까지는 합천군 야로면 구정리(九政里)의 구정제
(九政祭)에 배향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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