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漆谷) 매남(梅南) - 2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세거지(世居地)
시조(始祖)인 휘(諱) 송맹영(宋孟英)이 고려 목종(穆宗)조에 간의대부(諫議大夫) 총부의랑(摠部議郞)을 역임하여 야성군(冶城君)의 봉호(封號)와 식채(食采)를 받았다. 이로 인하여 야성(冶城)을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다.
2世손 : 휘(諱) 창(昌)은 검교신호위대장군(검교신호위대장군)을 지냈으 며,
3世손 : 휘(諱) 우(瑀)는 문림랑소부소감(文林郎小府小監)을 지냈다.
4世손 : 휘(諱) 인서(仁湑)는 상서호부금사동정(尙書戶部今史同正)을
지냈으며,
5世손 : 휘(諱) 광보(光輔)는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역임하였고,
6世손 : 휘(諱) 덕수(德修)는 추밀원장사랑상의직장동정(樞密院將仕郎尙 衣直長同正)을 지냈으며,
7世손 : 휘(諱) 정백(貞栢)은 우승선겸밀직제학(右承宣兼密直提學)을 역 임하였다.
8世손 : 휘(諱) 경(璟)은 정헌대부정당문학(正憲大夫政堂文學)을 역임하 였으며,
9世손 : 휘(諱) 기(綺)는 대광보국문하평장사(大匡輔國門下平章事)를지 냈다.
10世손 : 휘(諱) 구(構)는 가선대부경기감사(嘉善大夫京畿監司), 경상감사 (慶尙監司)을 지냈으며,
11世손 : 휘(諱) 길창(吉昌)은 가선대부행개성윤(嘉善大夫行開城尹)을 지 냈으며, 습봉(襲封) 야성군(冶城君)에 봉해졌다.
고려에 들어와 시조(始祖)공으로 부터 9대(代)를, 경남의 합천군 야로면 구정리(九政里)에 거처하다가 10대손(代孫 감사공(監司公) 휘(諱) 구(構)에 이르러 성주(星州)의 송천(松川)으로 이거(移居) 살았다.
구정리(九政里)는 아홉 세대에 걸쳐 내리 중앙관직에 진출하였다 하여 구정리(九政里)라고 일컬어지게 되었으니 지금까지 그 꽃 같은 이름이 남아 전한다. 비록 후손이 그곳을 떠난 지 500년이 넘은 세월이 지나고 거듭되는 병혁사화(兵革士禍) 등으로 9世 까지의 유당(幽堂)을 실전(失傳)하여 향화(香火)가 끊겼으나 1941년 종친들의 정성으로 합천군 야로면 구정리에 구정제(九政齋)와 망묘단비(望墓壇碑)를 세워 한식향사(寒食享祀)가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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