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명문가
대구·경북지방병무청장으로부터 2004년도부터 처음 시행 행사하는 병역명문가 선정결과 최종심사에서 국방부 장관상이라는 안내문을 받았다.
안내문의 요지는 “귀 가문은 3대 가족 6명 모두가 현역복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등 병역을 당당히 이행하여 모든 국민의 귀감이 되어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아 마땅하기에 2004년도 제1회 병역명문가로 선정하였음을 알려 드린다.”라는 내용이었다.
예로부터 대대로 학식이 높거나 대단한 벼슬을 한 집안을 일러 명문가라 한다. 3代(조부, 부·백부·숙부, 본인·형제·사촌형제)가족 모두가 현역복무를 명예롭게 이행한 가문을 병역명문가라 부른다.
병무청에서 2004년 처음 시작하여 매년 실시하고 있으며, 병역명문가 선양사업은 병역을 성실하게 이행한 사람이 주위로부터 존경받고 긍지와 보람을 갖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3대 가족 모두가 현역복무 등을 명예롭게 마친 가문을 찾아 대외에 널리 알리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
병역명문가로 선정되면 병무청에서 가문 대표에게 병역명문가 인증서와 인증패를 수여하고, 개인별로 병역명문가증을 발급해준다. 그리고 병역명문가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병무청이 협약을 체결한 유적지, 문화시설, 병원, 편의시설 등을 방문할 경우 입장료를 할인 또는 면제받을 수 있으며 군부대 영외 P.X를 사용할 수 있다. 현재 우리 가문의 가계도와 군 복무기간이 병무청 홈페이지 “명예의 전당” 코너에 영구히 게시되어 있어, 우리 가문의 명예를 높이는 큰 영광을 안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병무청 직원으로부터 병역명문가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군 복무하면서 어려웠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유년 시절 아버지를 아저씨라 불렀다. 아버지가 6.25 참전으로, 대구에 있는 모 고교에서 낮에는 3일간 M1소총 사격훈련을 밤에는 대구 남산국민학교(초등학교)에서 잠을 자고 3일 후 팔공산 전투부터 시작하여 북진 압록강까지, 압록강의 물을 수통에 받아 마시며 이제 통일이 되는 줄 알았더니,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여 내려오다 중공군의 4중 포위망에 걸려 마지막 포위망에서(개성 근처라고 함) 중공군의 포로로 붙잡혀 평안도 신의주 포로수용소에 갇혀있다가 휴전이 된 후 포로 교환 때 돌아와 다시 남은 군 복무를(4년) 한 후, 군 복무를 마쳤으며, 나는 태어나 아버지가 군 복무를 마치고 귀가할 때까지 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해 아버지를 아저씨로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삼 형제와 조카 2명이 육군에서 만기제대를 하였으며, 3대에 걸쳐 6명이 전체 197개월의 군 복무를 하였다.
2004년 9월 4일 서울 공군회관에서 열리는 행사 참석차 형님과 둘째 조카와 열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행사장에는 많은 내빈과 참석자들로 붐볐다. 우리 가문은 4번째 국방부장관상과 병무청장의 상페와 병역이행명문가 증서(제2004-4호)와 함께 상금 100만원 받았다.
집으로 돌아와 상금 100만원 중 50만원은 지역 불우이웃돕기로 쌀을 사서 읍사무소에 기탁 하고 나머지 50만원은 모교인 순심중고에 장학금으로 기탁 하기로 형제가 협의하여 기탁 하였다. (상금은 우리들의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군 복무를 마치고도 미 8군 군무원으로 40년을 군을 위해 근무했다.
수년 전 우리 형제간에 중국 북경과 장가계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장가계의 하룡공원에 가면 커다란 동상이 하나 있다. 중국의 마적 두목 하룡장군 동상이다. 하룡공원에 가면 한 번쯤 이 동상에 대해 알고 갔으면 한다. 바로 이동상의 주인공이 6.25때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개입한 장본인이다. 차마 이동상에다 침은 밷지 못하고 사진도 찍지 않고 지나쳐 왔다.
최근 들어서는 고위직 총리·장관내정자 중 병역문제를 포함, 도덕성 등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어 낙마하는 사람이 여러 명 있었다. 그만큼 병역은 분단국가의 현실 속에서 국민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매우 민감한 요소로 작용한다.
병역의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의무이자 권리다. 국가가 있어야 내가 있으며, 내가 있어야 국가도 존재한다. 그리고 성실한 병역이행은 국가안보를 튼튼하게 하여 한 국가의 존립을 굳건히 하고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의 발전을 이루는 기반이 된다. 따라서 병역명문가 사업을 통해 우리나라의 청년 사이에 건강한 국가관을 확산시켜 병역이행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현충일, 6.25 한국전쟁, 제2연평해전이 일어난 날들을 기억해야 한다. 모든 국민은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에 대해 보답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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