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수필)

겨울 눈꽃산행

공간(空間) 2022. 1. 8. 23:14

 

겨울 눈꽃산행

 

나는 겨울 눈꽃산행을 좋아한다.

나뭇가지 휘어지도록 눈 쌓인 순백의 한 폭의 산수화 같은 눈꽃과 상고대가 아름다운 산을 좋아한다.  

바람불어 쌓인 눈이 가루 되어 날리면 마치 봄날 춤을 추며 내리는 꽃비처럼 눈이 부신다. 산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매서운 칼바람의 추위도 잊어버리고 한편의 동화 같은 순색의 겨울 산속으로 나는 빠져들어 간다.

 

오늘은 덕유산을 종주하는 눈꽃산행이다.

덕유산(향적봉)은 해발 1,614m이며 무주구천동 33경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산이다. 오늘의 코스는 산행 들머리인 안성매표소-동엽령-송계삼거리-중봉-대피소-향적봉-백련사-삼공매표소 코스이며 예상 소요시간은 7시간.

 

산행 들머리인 덕유산 안성지구 매표소 출발, 출발지점에서부터 안전을 위하여 반듯이 아이젠을 신어야 한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를 내며 순백의 덕유산 향적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올해 들어 최고로 추운 날이란다. 동엽령을 오르는 중 카메라가 어디엔가 부딧쳤는데, 갑자기 렌즈 조리개가 얼어 터져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계속 요란한 소리를 낸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못쓰게 된 표준렌즈를 가방에 넣고 망원렌즈로 바꾸어 끼우고 걷는다. 오늘 좋은 그림을 건지기는 어렵다. 1시간 45분을 눈 쌓인 등산로를  타고 동엽령에 도착했다.

 

동엽령에서 남쪽 길로 가면 남덕유산이며, 북쪽 길로 가면 덕유산 정상을 가는 삼거리다. 그리고 동엽령은 덕유산의 주 능선이며 또한 남덕유산에서 올라오는 백두대간 길이다. 온 산이 안개꽃처럼 피어난 눈꽃과 상고대가 피어 산을 오르는 사람들 모두가 입을 벌려 닫을 줄을 모른다. 여기서부터 송계삼거리 1km 전까지는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멀리서 보면 개미가 기어가는 듯하다. 오르는 사람들과 내려오는 사람들이 무릎까지 빠지는 좁은 눈길의 등산로를 지날 때는 서로 어깨가 부딪쳐 위험하기도 하다. 미끄러지며 당기고 밀면서 덕유산의 정상인 향적봉을 향해 걸으며 순백의 자연을 만끽한다. 동엽령과 백암봉(송계 삼거리) 능선을 다람쥐가 재주를 하듯 떠밀리며 걷는다. 등줄기에서는 땀이 흘러내리고 장갑 낀 손끝은 시려 오며, 마스크에다 손수건을 8겹으로 접어 붙여도 금방 얼음 덩어리로 변한다. 그래도 마음은 즐겁기만 하다.

 

겨울 눈꽃산행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의 극치를 모를 것이다.

중봉을 지나 주목과 구상나무 군락지에는 더 많은 눈과 눈꽃과 상고대를 만드는 지역이다. 살아서 천년이요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 한쪽에는 푸르름을 자랑하고 다른 한쪽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죽어가는 주목을 바라보며 내가 지나온 날들을 뒤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노년을 생각해 본다.

희비가 교차 되는 시간을 버리고 나니 대피소에 도착했다. 대피소와 그 주변에는 수많은 인파로 점심을 먹을만한 장소도 없어졌다. 바로 앞이 향적봉이다. 덕유산 최고봉 향적봉은 해발 1,614m이다. 이곳의 오늘 체감온도는 영하 28도다. 한기가 오기 전 이곳을 내려가야 한다. 갈 길은 멀고 시간은 촉박해진다. 겨울 산은 금방 해가 떨어지며 어두워져 위험해진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인증샷을 하고 백련사를 향해 가파른 길을 미끄러지며 내려간다. 배에서는 꼬르륵꼬르륵 밥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벌써 오후 3시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 한 모퉁이서 게눈 감추듯 늦은 도시락을 먹고 쉴 틈도 없이 내려가니 백련사다.

 

백련사를 뒤로하고 삼공매표소를 향하여 뽀드득뽀드득 걷고 또 걸어도(1시간 30) 평탄한 길이지만 지루하기 끝이 없는 길이다.

또 하루해가 저물어간다. 7시간의 눈꽃산행 나는 어느 계절 어느 산이 끌리지 않겠냐마는 특히 겨울 눈꽃산행이 더 좋다. 순백의 산을 바라보며 계곡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에 얼어버린 눈꽃과 상고대의 아름다움이 있는 겨울 산의 묘미를 듬뿍 느끼게 해주며 나의 인생에 있어 깨달음과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주는 겨울 산이다.

 

나는 올겨울 또 다른 겨울 산행을 꿈꾸어 본다.

 

2016 111

 

*주목과 구상나무구별법

. 주목나무는 열매가 붉은색이며.

. 구상나무는 열매가 작은 솔방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