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최초의 절 도리사(桃李寺)
도리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도량
도리사(桃李寺)는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였으며 신라에 세워진 절로서는 최초이다. 도리사(桃李寺)홈페이지 연혁에는 눌지왕(訥祗王) 때 (417년)에 창건되었다고 되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아도화상(阿道和尙)은 중국 사신과 고구려 여인 사이에 태어났으며, 어릴 때 이름은 묵호자(墨胡子)였다고 한다. 그는 중국에 가서 스님이 되었으며, 나중에 고구려와 신라에 불교를 전하였다. 묵호자(墨胡子)와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설도 있다.
'해동최초가람성지태조산도리사'(海東最初伽藍聖地太祖山桃李寺)
도리사 안내도
도리사 종각
적멸보궁(寂滅寶宮) : 부처님진신사리를 모신곳,
사리탑안내문
부처님진신사리탑
부처님진신사리탑
부처님진신사리탑
적멸보궁과 사리탑
사리탑의 석등
사리탑의 팔정도(八正道)
사리탑 으로 들어가는 문
적멸보궁에서 바라본 풍경
도리사 설선당(桃李寺 說禪堂)
도리사 수선요(桃李寺 修善寮)
태조선원(太祖禪院)
아도화상(阿道和尙)
아도화상(阿道和尙)
생몰년 미상. 고구려의 승려. 아도(我道)·아두(阿頭)라고도 한다. 《삼국유사》의 〈아도본비 我道本碑〉에 의하면, 고구려인인 어머니 고도령(高道寧)과 정시연중(正始年中, 240∼248)에 고구려에 사신으로 왔던 조위인(曺魏人) 아굴마(我堀摩) 사이에서 태어났다.5세가 되었을 때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출가하여 16세에 위나라로 가서 아굴마를 만나보고, 현창화상(玄彰和尙)의 강석(講席)에서 공부한 뒤 19세에 귀국하였다.이때 어머니가 신라로 갈 것을 권하면서, “이 나라는 지금까지 불법을 모르고 있으나 이후 3,000여월이 되면 계림(鷄林)에 성왕이 나와서 크게 불교를 일으킬 것이다. 그 나라 서울 안에 7개소의 가람터가 있으니, 1은 금교(金橋) 동쪽 천경림(天鏡林), 2는 삼천기(三川跂), 3은 용궁(龍宮) 남쪽, 4는 용궁(龍宮) 북쪽, 5는 사천 끝, 6은 신유림(神遊林), 7은 서청전(婿請田)이니 모두 전불(前佛) 때의 가람터요 불법이 길이 유행하던 땅이다.네가 그곳으로 가서 대교(大敎)를 전파하면 석사(釋祀)가 동으로 향하리라.”라고 하였다. 아도는 263년(미추왕(味鄒王) 2)에 신라로 가서 왕성의 서리(西里)에 머물렀다. 아도가 대궐에 들어가서 불교를 행하기를 청하였으나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라 하여 꺼려하였고, 심지어는 죽이려는 사람까지 있었다. 이에 일선현(一善縣) 모례(毛禮)의 집에 숨어 살았다.264년에 성국공주(成國公主)가 병이 들어 무당과 의원이 치료를 하였으나 효험이 없자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 의사를 구하였다. 아도가 대궐로 들어가 병을 치료하여 나았으므로 왕이 대단히 기뻐하며 그의 소원을 물었다.그가 천경림(天鏡林)에 절을 세워 불교를 크게 일으켜 방가(邦家)의 복을 비는 것이 소원이라 하였으므로, 왕이 허락하였다. 띠로 집을 덮고 흥륜사(興輪寺)를 창건한 뒤 그곳에서 불법을 강연하였으며, 모례(毛禮)의 누이인 사씨(史氏)도 이때 여승이 되어 삼천기(三川跂)에 절을 짓고 영흥사(永興寺)라 하였다.얼마 뒤 미추왕(味鄒王)이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이 다시 그를 해하려 하였으므로, 다시 모례(毛禮)의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 무덤을 만든 다음 문을 닫고 들어가서 자절(自絶)하여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또한 《삼국유사》의 다른 기록과 《삼국사기》에는 아도(我道)가 신라 소지왕(炤知王)때 시자 3인을 데리고 일선군 모례(毛禮)의 집에 와서 있다가 몇 년 뒤 병 없이 죽었고, 그의 시자 3인이 경률(經律)을 강독하여 가끔 믿는 이가 있었다고 하였다.이밖에 아도(阿道)에 대해서는 여러 책에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데,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는 서축(西竺) 사람이라고도 하고, 오나라에서 온 사람이라고도 하였다.
若而色見我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위의 아도화상(阿道和尙)의 동상에 보면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책을 펼쳐들고 있다. 그 책에 위와 같은 글이 적혀있다.
해석하면 이렇다. 만약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나를 보려고 하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찾으려 한다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고 있어서 여래를 볼 수 없다.
≪금강경≫의 4구게 중의 하나이다. 하물며 불상에서 부처님을 찾는 것이 무엇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전 곳곳에 보면 불상이나 불탑을 조성하는 것이 공덕이 크다고 되어있다. 불상에 예배하는 것 역시 공덕이 크다. 불상과 불탑을 조성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부처님을 더 생각하게 하니 공덕이 큼이요, 불상에 예배함으로써 자기의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고 자기를 돌아볼 수 있으니 공덕이 크다. 참회하는 마음, 보시하는 마음, 정진하는 마음, 인욕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낼 수 있는 기회가 되니 공덕이 크다. 그러나 깨닫고 보면 곳곳 물물이 진리 아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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