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산사)

해평 도리사(桃李寺) - 2

공간(空間) 2014. 12. 2. 22:25

신라 최초의 절 도리사(桃李寺)

도리사 극락전(桃李寺 極樂殿) : 경북 문화재자료 318호

 

도리사 극락전(桃李寺 極樂殿)

 

도리사 석탑(보물제470호)

 

도리사 석탑(보물제470호)

 

 

 

도리사태조선원(桃李寺 太祖禪院)

 

목탁

 

삼성각(三聖閣)

 

부 도

 

사씨부인 (수선요)

모례(毛禮)의 누이인 사씨(史氏)도, 여승이 되어 삼천기(三川跂)에 절을 짓고 영흥사(永興寺)라 하였다.

 

포대화상

포대화상 布袋和尙 五代的一位高僧。法名契此,又號長汀子。明州奉化(浙江

당나라 명주 봉화현 사람으로 법명은 契此(계차)이다. 뚱뚱한 몸집에 얼굴은 항상 웃으며 배는 풍선 처럼 늘어져 괴상한 모습으로 지팡이 끝에다 커다란 자루를 걸러메고 다니는데, 그 자루 속에는 별별 것이 다 들어있어서 무엇이든 중생이 원하는대로 다 내어주어서 포대스님이라고 불렀다. 무엇이든 주는대로 받아먹고 땅을 방바닥으로 삼고 구름을 이불 삼고서 어느 곳에서든지 벌렁 누워 태평하게 코를 골며 이마을 저마을 돌아다니면서 세속사람들과 같이 차별없이 어울리면서 길을 가르치고 이끌었다. 연꽃과 같은 삶이었다. 그는 자연과 더불어 자고 깨었으며 자연과 더불어 행하였고 대자연으로 돌아간 걸림없는 대자유인이었다.천백억으로 몸을 나누어도 낱낱이 참 미륵일세 항상 세인에게 나뉘어 보이건만 아무도 미륵임을 아는 이 없네 게송을 남기고 반석위에 단정히 앉은채로 입적하였다.포대화상은 중국의 선사로서 기인이었다. 그는 항시 개 뼈다귀로 가득한 자루를 지고 다녔다. 그는 이 마을 저 마을 자루를 지고 다니면서 "개 뼈다귀 사시오. 개 뼈다귀 사시오." 외치며 다녔다. 사실 개 뼈다귀는 전혀 쓸모가 없는 쓰레기와 같은 것이었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미친사람으로 취급하였다. 짖꿎은 아이들이 막대기로 번갈아가며 때리기도 하였으나 그는 때론 울음 짓기도하고 아이들과 실갱이 하기도하며 바보 짓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相見, 邪見을 가진 일반인들을 제도하기 위한 가르침이었다.

 

 다음은 그의 노래이다.

 

 夜夜胞佛眠 밤마다 부처를 보듬고 자다가

 朝朝還共起 아침마다 같이 일어난다.

 起坐鎭相隨 일어나건 앉건 서로 붙어다니며

 語默同居止 말을 하건 않건 같이 머물고 눕는다

 纖豪不相離 털끝만큼도 서로 떨어지지 않으니

 如身影相似 몸의 그림자 같구나

欲識佛居處  부처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자 할진대

只這語聲是  다만 말하는 이놈이니라.

(모셔온글)

 

 

도리사 태조선원과 극락전

 

도리사 고사목

 

도리사 고사목

 

 

도리사 장독대

 

도리사 반야쉼터

 

도리사 반야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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