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사 수도암(靑巖寺 修道庵)
가을비가 나리는날의 산사~
청암사 수도암(靑巖寺 修道庵) ,수도산(修道山) 수도암(修道庵)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수도암(修道庵)은 일찍이 도선국사가 이곳을 찾아 터를 발견하고 만대의 수도 인이 나올 곳이라고 하며 기뻐서 7일간 춤을 추었다는 천하 명당이다. 그래서 절 이름을 수도암이라 하고 산 이름을 수도산이라 했다. 수도암이 앉은 자리는 풍수 지리적으로 여인이 베틀에 앉아 옷을 짜는 형국(玉女織錦形)이라 대적광전에 부처님을 대불로 모시게 되었으며 법당 앞에 탑 두 기는 베틀의 두 기둥을 상징하고 있고 선방 앞에는 실 감는 도토 마리석이 있다. 또 북 실을 담그는 물이 있어야 하므로 옛날 관음전 마당에는 비교적 큰 연못이 있었는데 법전선사가 관음전을 신축하면서 연못을 메우고 마당을 만들었다. 수도암 왼쪽으로는 산 능선이 길고 힘차게 뻗으며 절을 감싸고 오른 쪽 산 능선은 웅장하면서도 짧게 안으로 절을 감아주고 있다. 정면에는 가야산 정상이 일자능선 위로 연꽃처럼 솟아 있어 옛날부터 수도암에서는 연화봉이라 부른다. 때문에 연화봉은 부처님의 공덕과 자비를 나타내고 일자능선은 평등한 진리의 체성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이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수도암 뒤쪽에 높게 솟아 있는 수도산은 언제부터인가 불영산이라고 불려져 왔는데 100여년전부터 부처님의 영험과 가호가 많다 하여 불영산이라고 하였다. 또 이곳 석불 이마에서부터 자주 방광(放光 : 빛을 내어 멀리 뻗어나감)이 있었으므로 불영산이라 불리기도 하며 수행자가 모여 수도하고 마음 밝히는 곳이라 하여 수도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수도암(修道庵)의 창건 연대는 따로 전하는 것이 없으나 청암사 사적비에 쌍계사 (현 증산면 소재지), 청암사, 수도암(修道庵)을 같이 창건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신라 헌안왕 3년(서기 859) 통일 신라 말 도선국사(이때 국사 31세 때)가 창건하시었고 그 후 조선시대 제 11대 중종 을사년(1545) 상거선사께서 중창하셨다. 다시 조선시대 제 16대 인조 27년(1649) 벽암선사께서 중흥하셨으며 고종 31년 동학혁명 운동이 일어나 암자의 일부가 소실된 것을 6년 후 광무 4년(1893) 포응선사께서 다시 이룩하고 그 이후 경허(鏡虛)선사가 잠시 주석하셨으며 그때 오대산에 계셨던 한암(寒岩)선사도 계셨고, 해방 전에 효봉(曉峰)선사와 구산(九山)선사가 계셨으며 6.25사변 전에 우봉스님이 오시면서 상좌인 상호스님을 원주 보게 하다가 1961년까지 주지를 맡으셨다. 특히 6.25 이후 큰 절이었던 쌍계사(현 증산면 소재지)가 전쟁 중에 불타고 난 뒤 수도암도 함께 퇴락 하였지만 끊임없이 도력 있는 선승들의 왕래가 많았으며 근래에도 많은 고승들이 수행한 곳이다.
수도암에는 현재 본당(本堂)인 대적광전(大寂光殿), 약광전(藥光殿), 나한전(羅漢殿), 조사전(祖師殿), 선원(禪院), 적묵당(寂黙堂), 관음전(觀音殿), 봉황루(鳳凰樓)가 있으며, 부속암자로써 정각(正覺), 서전(西殿), 낙가(洛伽), 한적(閑寂) 등이 있다.
대적광전과 삼층석탑
삼층석탑(보물 297호)
수도암 약광전
대적광전에서 바라본 가야산 정상,
일자능선 위로 연꽃처럼 솟아 있어 옛날부터 수도암에서는 연화봉이라 부른다.
수도암의 가을
수도암 나한전~
수도암 나한전의 문살~
수도암 나한전의 문살~
수도암 관음전~
수도암 ~
수도암 ~
수도산 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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