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수필)

청량산을 찾아서

공간(空間) 2022. 2. 19. 21:06

청량산 오층석탑

청량산을 찾아서

 

  

새벽 쓰레기차의 요란한 소리에 놀라 깨어났다.
지난 20여일 전부터 봉화의 청량산을 가보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으나 마음먹은 대로 잘되질 않았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엔 결혼식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오늘은 단단히 마음먹고 떠나야지 하면서 일들을 대충 정리하고 떠나려고,
아침을 먹자마자 옆지기에게 오늘은 북삼 안 가냐고 물으니 옆지기 왈 가야지 뭔 말이요.”
매주 토요일은 북삼에 홀로 계시는 옆지기의 어머니(나의 장모님)ㅋㅋㅋ... 뵈러 가는 날이다.
북삼을 다녀온 후, 대충대충 볼일을 보고 나니 벌써 12시가 넘었다.

 

간단히 점심 한 끼 때우고, 순간순간 시야를 스쳐 가는 잔설들을 구경하며 55번 중앙 고속도로를 달려 남안동 IC를 나오니, 나의 고물단지 애마가 소리를 낸다~~~
요놈이 또 배가 고픈가 보다, 비상용 엔진오일을 애마의 입에다 털어 넣은 뒤 안동 시내를 관통 35번 도로로 들어서서

도산서원 이정표를 보고 달린다.
저 멀리 안동댐이 보인다. 예안면을 지나는 안동댐 다리 밑에는 가뭄으로 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옛날 낚시를 다니던 때에는 물도 참 많았었는데.


예안면을 뒤로하고 조금 더 올라가면 월천서당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장마철에 월천서당 앞 강가에서 낚시를 준비하다, 땅속에 집을 지어 사는 땅벌(양봉벌보다 몸집이 가늘며 작다)에 쏘여 안동 시내 병원으로 실려 가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지난 일이라 추억처럼 되었지만, 잘못하면 생명까지 잃을 수 있다.

 

도산서원을 지나면, 이육사 시인의 생가와 시비가 있는 온혜리가 나온다. 이육사 생가를 지나면 고산정이고 고산정 입구의 커브 길을 빠져나가면 저 멀리 바위산 하나가 시야를 막는다, 이 산이 청량산이다.

길 우측으로는 태백산맥에서 내려오는 물들이 모여 강을 이루고 이 강을 예안강이라고 부른다.
예안강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청량산 도립공원 입구를 맞게 된다.

지금 계절에는 입구 우측 학소대 절벽과 청량산에서 내려오는 개울의 구름

다리 위를 봉화군에서 인공빙벽으로 만들어 놓아 관광객을 유혹한다.

 

매표소를 지나면 다리가 하나 나온다.
다리를 건너기 전 좌측에 퇴계 이황 선생의 청량산가시비가 있으며,
청량산 산행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청량산가에서 청량산 6.6봉을 아는 이는
                나와 흰 기러기뿐이며,
                어부가 알까 하노라.”

      

     또는    “청량산 육육봉을 아나니 나와 백구
                백구야 훤사하랴만 못 믿을 손 도화로다.
                도화야 떠나지 마라 어주자 알까 하노라.”


청량산가 시비를 뒤로하고 달린다.
예전에 왔던 이 길은 비포장도로였으나 지금은 말끔히 포장되어 있었다.
중간쯤 민박집이 지금도 있으며,
그러나 예전의 그 인심 좋은 민박집은 어디 가고 콘크리트 집들로 개축되어 있다. 예전에 이곳에서 하룻밤 자던 추억이 살아난다.
방이 모자라 친구 부부는 그 옛날 담배를 건조하던 곳을 개조하여 만든 방에서 자고, 우리는 마당에 자리를 깔고 모기장을 치고 자던,
그 시절이 지금은 추억되어 주마등처럼 순간순간 뇌리 속을 스쳐 지나간다.

 

예전에는 고갯마루에 주차장이 있었으나,
지금은 옛날 청량사로 걸어서 올라가던 초입 길 입구에 정자와 주차장을 만들어 놓았었다.

나의 고물 딱지 애마가 숨이 차나 보다. 여기까지 오는 데 2시간 20분이나 걸렸다. 주차장에 나의 애마를 묶어두고

청량사로 향했다. 가파른 길이지만 포장이 되어 있었다.

한참을 오르자 제일 먼저 반겨주는 곳이 안심당(安心堂) 이다.

이 안심당은 성불 소리와 좋은 말씀, 그리고 명상의 말씀이 흐르는 가운데,
잠시 속세를 벗어나 한잔의 차를 음미하며 마음을 비우고 잠시 명상으로 빠져들어 마음을 편안하게 다듬을 수 있는

곳이다.

안심당 출입구엔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글귀가 걸려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다,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나~
그리고 솟을대문이 있고, 옆에는 누군가가 기와에 옮겨 써놓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이 눈길을 끌었다.

  

 

  고요히 앉아,
  ()
  반쯤 마셨는데,
  향기는 처음과 같고,
  묘용(妙用)
  때에,
  물은 흐르고
  꽃은 피도다.
  

 

안심당(安心堂)을 지나면 청량산 청량사라는 범종각이 있다,

범종각에는 범종과 법고, 그리고 범어가 있다.

이곳을 지나면 유리보전이라는 현판이 붙은 대웅전이다.
이 현판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을 지나다 여기에 잠시 머무르고 있을 때 쓴 친필이라고 한다.

유리보전 앞뜰에는 소나무 사이로 오층석탑이 하늘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풍경이 아름답다.

정상까지의 등산로는 유리보전을 지나면 된다.

오늘은 너무 늦게 도착해서 정상을 가지는 못할 것 같다.

둘러멘 가방을 풀고 카메라를 꺼내 몇 장의 사진을 그리며, 경내를 휘이 둘러보니 예전 모습은 반밖에 없었다.

갑자기 성철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가 생각이 난다.

 

건물들은 그동안 많이 증축되고 손질이 되어 그 옛날보다는 짜임새 있어 보였다. 그리고 신도들과 관광객이 붐비고

있어 예전보다는 더 포근함이 있어 보인다.


이제 하산을 해야 할 시간이다.

청량사를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에 나 홀로 중얼거려 본다.


 

추억의 청량산

 

  가방 하나 둘러메고

청량산을 오른다

 

  잔설 녹아 흘러내리는 낙숫물 소리
  안심당安心堂의 차 향기와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고요히 흐르는 성불 소리

  

  유리보전 스님의 염불 소리에
  삼라만상이 잠들고
  고요가 흐른다

 

  인경소리와 풍경소리
  목탁 소리와 성불 소리

새소리와 낙엽들의 소리가

청량산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어머니의 품속에서 
  잠을 이루는 아이처럼

  내 마음 또한
  청량산에 안기고 싶어라

 

   200525

 졸작, 추억의 청량산

 

이제 해는 서산에 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나의 비둘기 집으로
애마의 고삐를 풀고 달린다.
길에는 긴 그림자 드리우고 어둠이 내린다. 이제 오늘 하루도 마감해야만 할 시간이다.

내일을 위하여~.

 

*유리보전琉璃寶殿

약사여래(藥師如來)을 봉안한 사찰의 전각. 약사여래는 약사유리광여래(藥師琉璃光如來)의 준말이다

 

* 대웅전: 석가모니 부처님을 봉안한 사찰

* 적멸보궁 :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는 불교건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