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산사)

흥국사(여수 영취산)

공간(空間) 2014. 11. 17. 20:05

흥국사(興國寺)

여수 영취산(靈鷲山) 중턱에 자리 잡은 1195(고려 명종 25) 보조국사 지눌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호국 불교의 성지인 이곳은 임진왜란시 승병 훈련소로도 유명하다. 이절은 호국정신이 창건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고, 이 정신이 크게 부가된 것은 조선시대의 커다란 국란인 임진왜란시에 의승군의 본거지가 되어 400여명이 활약한 때에, 절 안에는 보물 제396호인 대웅전, 원통전, 팔상전, 부조전, 응진전등 14채의 절집과 괘불, 보물 제578호인 대웅전 후불 탱화,그리고 보물 제563호인 홍교가 있다. 나라가 흥하면 이 절도 흥할 것이라는 흥국의 염원을 담고 있어 흥국사라고 전한다. 흥국사가 있는 영취산 계곡의 맑은 물은 시민들의 휴식처로 각광을 받고 있다.흥국사 홍교는 1639(인조 17) 화강석을 재료로 하여 아취식으로 만든 석조 문화재이며, 특징은 총 86개의 장방각석이 이루어져 스스로의 무게를 지탱 하도록 구축되어 있으며, 1981년 폭우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붕괴되었으나, 이듬해에 다시 원형대로 복원되었으며, 이곳에서는 매년 홍교밟기가 이루어지고 있다.(길이 11.8m,2.7m, 높이 5.5m)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이다. 1195(명종 25) 보조국사가 창건한 이후 국찰(國刹)로 크게 번성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559(명종 14) 화재로 소실된 것을 법수대사가 중창했다. 임진왜란 때 기암대사가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이 절의 승려들을 이끌고 전쟁에 참가했는데 절은 전란중에 불타버렸기 때문에 1624(인조 2) 계특대사가 삼창했다.1984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8호로 지정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보물 제396원통전(圓通殿,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5불조전(佛祖殿무사전(無私殿적묵당(寂默堂심검당(尋劍堂백련사(白蓮舍법왕문(法王門봉황루(鳳凰樓영성문(迎聖門천왕문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홍교(보물 제563대웅전후불탱화(보물 제578흥국사노사나불괘불탱(興國寺盧舍那佛掛佛幀, 보물 제1331흥국사수월관음도(興國寺水月觀音圖, 보물 제1332흥국사십육나한도(興國寺十六羅漢圖, 보물 제1333여수 흥국사 동종(麗水 興國寺 銅鍾, 보물 제1556여수 흥국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시왕상일괄및복장유물 (麗水 興國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十王像 一括 腹藏遺物, 보물 제1566여수흥국사삼장보살도(麗水 興國寺 三藏菩薩圖,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99여수흥국사제석도(麗水 興國寺 帝釋圖,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00)를 비롯해 경판 236, 경전 93, 부도 13기 등이 있다.

 

 

 

천왕문(天王門)

 흥국사(興國寺)에 천왕문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1805년에 기록된 흥국사천왕중수개채기(興國寺天王重修改彩記)’가 있어 이미 이전에 천왕문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사천왕상은 매우 거대하게 조성되어 있는데, 천왕문에 걸려있는 천왕문사천왕상홍교중창기(天王門四天王像虹橋重創記)’로 추정하건데 1982년에 새롭게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천왕문 정면 3, 측면 2칸의 평면이며,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조성된 건물이다. 중앙 어칸은 통로로 사용되고 있으며, 좌우의 협 칸에 각각 2기의 천왕상을 봉헌했다

 

 

 

법왕문(法王門)

법왕문(法王門)은 정면 3,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을 한 겹처마의 당우이다. 선당수습상량기에 의하면 1624년 계특대사가 흥국사(興國寺)를 복원한 후, 옥청스님이 법왕문(法王門)을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어, 적어도 17세기 중반에는 이 법왕문(法王門)이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법왕문(法王門)은 법왕이신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지닌 문으로 흥국사(興國寺)에서는 사찰의 주불전 앞에 위치하는데, 이런 모습은 가람배치 상 흔치 않다. 흥국사(興國寺) 인근에 위치한 승주군 송광사에도 1951년 이전에는 대웅전 전면에 정면 3, 측면 3칸 규모의 법왕문(法王門)이 존재하였다. 법왕문(法王門)의 독특한 배치는 화엄계 선종사찰에서 당탑(堂塔)대신 산문 형태로 가람의 중심을 삼고자 한 것으로 추론된다. 이 건물은 창방뺄목을 외부로 많이 돌출시키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공포는 기둥상부에만 두었다.  

 

 

대웅전(大雄殿)(보물  396 

  

대웅전(大雄殿) 건물은 정면3, 측면3칸의 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다포형식을 사용했고, 가구형식은 1고주 7량이다. 기단은 잘 다듬은 장대석을 2벌대로 쌓아올린 후, 그 위에 갑석을 사용해 마무리했으며, 기단 면에는 게를 비롯한 물짐승 등 여러 장식을 베풀어 놓았다또한 기단 중앙에는 긴 장대석을 사용해 8단의 계단을 설치했으며계단의 소맷돌에도 2단에 걸쳐 용머리를 장식해 놓았다. 또한 계단 전면에 위치한 궤불대 역시 용으로 장식해 두었다.  대웅전(大雄殿) 전면에 게, , 거북과 같이 바다와 관계된 수많은 동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범종각(梵鐘閣)

범종각(梵鐘閣)1988년 새롭게 중창한 건물이다. 정면 3, 측면 2칸의 건축으로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봉황루(鳳凰樓)와 마찬가지로 경사진 대지를 적절히 이용하여 전면은 2층 구조, 배면은 1층 구조로 만들었다. 1층은 불교용품점 판매소 및 예배처로 사용되고 있으며, 주목적은 종각은 배면으로 진입하게 만들었다.  가구는 5량 구조를 기본으로 만들었는데 종의 무게를 버틸 수 있도록 중간에 2개의 고주로 대들보를 받칠 수 있게 보강했다.

종을 걸기위해 대들보 사이에 도리방향으로 또 다시 보를 얹었으며 이 보 상부에 종을 매달았다.

 

 

 

 

 

 

 

 

팔상전(八相殿)(문화재자료제258) 

 흥국사(興國寺)의 부속 불전인 팔상전(八相殿)은 계특대사가 1624년 창건했던 대웅전(大雄殿)1690년 통일대사가 중창하면서 기존의 대웅전(大雄殿)으로 사용되었던 구 부재를 이용해 대웅전 뒤편 언덕에 새롭게 팔상전(八相殿)을 지었다고 한다. 이후 1815년 응운대사가 팔상전(八相殿)을 중수했다고 하는데 현재 팔상전(八相殿)의 모습은 건물의 세부 기법 상 이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50여점의 조선후기 명문 기와가 확인되어 흥국사(興國寺) 불사의 연혁도 알 수 있다

정면 3, 측면 2칸의 다포계작집으로 대웅전에 버금가는 부속건물이다.

기단은 막돌허튼층쌓기 방식으로 쌓아올렸으며, 초석은 막돌초석을 사용하고 있다.

전면의 창호는 어칸의 경우 4분합문을 사용했고 좌우협간에는 3분합문을 사용했다. 중앙의 4분합문은 모두 빗살을 사용했다. 좌우 3분합문의 경우는 중앙 문에는 빗살을 또 좌우에는 정자살을 사용해 마감했다.

기둥에 배흘림과 안 쏠림, 귀솟음이 나타나 전통적인 형식을 띠고 있다

기둥은 원형 기둥을 사용했으며, 창방과 평방을 갖추었고, 그 상부에 공포를 얹고 있다. 공포는 외2출목, 3출목을 구성했으며, 정면과 배면의 어간만 2좌의 공간포를 사용했고 다른 부분은 모두 1좌의 공간포를 사용했다. 전체 가구는 1고주 5량을 기본으로 구성했는데, 방형의 고주를 사용했으며, 그 굵기도 매우 가늘어 후불벽 조성을 위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천장은 우물천장을 기본으로 구성했고, 바닥은 우물마루를 사용했다. 마루구성에 있어서 특이하게 후불벽 뒷면에 위치한 마루를 한단 높여 구성했는데, 전면보다 후면의 높이가 높은 대지상황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단위에는 '자형 닫집이 있어 매우 호화롭게 하였다. 팔상전(八相殿)의 주존 역시 대웅전(大雄殿)과 마찬가지로 석가모니불이기 때문에 불단을 만들어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좌우 협시로 문수, 보현보살을 봉안했다. 팔상전(八相殿)은 대웅전(大雄殿) 뒤편 언덕에 응진전과 더불어 또 다른 영역을 이루며 조성되어있다

 

 

 

 

 

 

 

 

 

 

 

 

 

 

 

 

 

 

 

 

 

 

 

 

 

흥국사(興國寺) 

진달래꽃으로 유명한 영취산(靈鷲山)의 중턱에 자리잡은 흥국사(興國寺)1195(명종 25)에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이 절의 승려들이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적을 무찌르는데 공을 세웠으나 절이 모두 타 버려 지금 있는 건물들은 1624(인조 2)에 사찰을 중수한 것을 시작으로 1800년대까지 계속 복구되었다. 

흥국사(興國寺)는 영취산을 주산으로 설정해 배치를 이루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서북향을 하고 있다. 현재 모든 건축물들은 지세에 따라 각기 약간 다른 좌향을 보이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주축을 설정하고 이에 어울려 모든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절의 입구에는 홍교가 만들어져 있어 이를 통해 개울을 건넜을 것이나, 현재는 새로 진입로가 만들어져 이곳을 통해 진입한다. 매표소를 통해 절의 경내로 들어가면 거의 북향에 가깝게 일주문이 들어서 있고, 이를 통과하면 왼쪽 편에 부도밭을 만들었고, 12기의 부도가 모셔져 있다. 여기서부터 개울을 따라 꽤 긴 거리의 진입로가 조성되어 있다. 이 진입로 끝에 영취산흥국사중수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사적비를 지나 영취교, 천왕문, 봉황루, 법왕문, 최종적으로 대웅전까지 만들어지는 동선은 원래 직선적이었다고 한다. 즉 봉황루 하부를 통해 루하진입 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근래 봉황루 하부 계단을 막고 이곳을 공간으로 사용하면서 측면을 통해 진입하도록 변경했다고 한다.

봉황루를 돌아서면 법왕문과 봉황루사이의 작은 마당을 만난다. 이 작은 마당은 대웅전 영역으로 진입 이전의 점이공간이라 할 수 있는데 그 크기에 있어 적당하며, 법왕문으로 오르는 넓은 계단의 존재가 더해져 관찰자의 긴장감을 높여주는 요소로 표현되었다. 흥국사 배치에서 가장 특이한 요소는 전체 건물들 한 중앙에 법왕문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법왕문 내부에는 경배대상으로서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다. 단지 비어있는 공간으로 전체 배치에 있어 영역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법왕문은 일제강점기에 조사된 송광사 배치도에서 확인 가능한데, 송광사에서도 역시 사찰 배치의 한 중심에 이러한 법왕문이 위치하고 있다. 이것은 화엄종 교리중 하나인 중심으로의 통합 사상을 표현하는 예라한다. 법왕문을 지나 대웅전 마당에 다다르면 대웅전, 심검당, 적묵당 및 법왕문에 의해 형성되는 또 다른 마당에 다다르게 된다. 

 

아쉽게도 홍교와 일주문을 보지못하고 성지순례의 버스는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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