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계폭포(玉溪瀑布) (박연폭포)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2020년 5월 10일, (09:50) 왜관출발 - 남구미IC
- 황간 IC - 영동 - 옥계폭포(10:10)
코로나19, 그리고 무급휴가로 인해 집안에 있으려니 무료하기만 하여,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애마를 채찍질하여 한시간 이내 거리의 충북 영동군에 있는옥게폭포를 찾았다
옥계폭포(玉溪瀑布) :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영동에서 북쪽으로 국도를 따라 약 12Km 정도 가다 다시 왼쪽 산으로 접어들면 영동 유일의 폭포에 이르게 되는데 이 폭포가 유명한 옥계폭포이다. 옥계폭포(玉溪瀑布)는 이중환(李重煥)의 저 유명한 택리지(擇里志)에도 소개된 폭포이며 일찍이 최남선(崔南善)도 그의 저서에 서 소개했던 폭포인 것이다 .
옥계폭포 위쪽에는 예저수라는 사각형 바위로 된 못이 있는데 오랜 옛날에 그 연못 속에 용(龍)이 살았다고 전해 온다.
이 연못은 아무리 큰 장마가 져도 흙으로 메워지는 일이 없었으며 어찌나 깊은지 그 깊이를 가늠 할 수 가 없었다. 어느 해던가 못의 깊이를 재어 보려고 마을 사람들은 명주실 한 꾸러미를 들고 나와 돌을 달아 집어넣어 보았지만 실 한 꾸러미가 다 들어가도 끝이 나타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못의 구멍이 북쪽 옥천군(沃川郡) 이원면(伊院面)으로 뚫려 있는 것으로 믿게끔 되었다. 어느 해 극심한 가뭄이 들어 폭포 위쪽의 예저수 물을 푸게 되었다. 차츰 못의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말로만 들어오던 용의 모습이 실제로 못 속에서 나타난 것이다. 귀가 집신 크기만 하고 몸길이는 꼬리가 폭포 아래쪽까지 내려갈 정도였고 폭포 위쪽에 척 걸쳐진 용의 머리를 보고 물을 푸던 일꾼들은 기겁을 하여 모두 도망가 버렸다. 용이 사람의 눈에 뜨이자 그 뒤 못은 차츰 메워져서 지금의 형태로 남아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옥계폭포 위쪽에 계수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는데 어느 해 봄날 한 쌍의 부부가 이 계수나무에다 그네를 매어놓고 놀이를 하다 그만 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폭포수 아래로 떨어져서 죽어 버렸다. 그들 부부는 죽어서 한 쌍의 파랑새로 변하였다.
파랑새는 폭포 근처의 아름다운 산수를 잊을 수가 없어 이곳을 떠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지금도 매년 봄이 되면 한 쌍의 파랑새가 폭포수 근처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폭포를 찾는 많은 시인들은 그들의 느낌을 시로 남겨 놓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그 부근에 있는 난계사당과 금강유원지의 개발로 더욱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오가고 있는 실정이다.
국악의 거성 난계가 즐겨 찾았고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옥계폭포는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로 진입하여 천모산 골짜기로 들어서서 산길을 따라 약 1km전방에 위치한다. 자동차를 이용 한다면 천국사 주차장을 이용하여 약 700m를 오솔기로 걷거나, 아니면 좀더 올라가서 옥계폭포 약150m 전방 매표소에 주차를 하고 걸어 올라가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옥계폭포만 볼 것이 아니라 매표소부터 옥계폭포까지 가는 길의 풍치도 감상하면서 오솔길도 걷는 다면 더욱 기억에 남는 여행길이 아닐까 한다. 폭포에서 떨어진 옥수가 천모산 계곡을 따라 흐르다 잠시 머무는 산중(山中) 조그마한 저수지의 풍경과 뒤이어 나타나는 오솔길을 걷는 상큼함도 결코 나쁘진 않을 것이다.
옥계1폭포...
월이산 남쪽 산등성이가 이루는 협곡에는 2개의 폭포가 있으며, 그 중 높이가 20여m에 달하는 이 폭포가 제1폭포이며, 옥계1폭포 위 계류를 거슬러 100여m 오르면 약 5m 높이의 작은 폭포가 협곡사이에 숨어 있다.
한국의 3대 악성인 난계 박연 선생 이 즐겨 찾았던 옥계폭포...
옥계폭포에서 영감을 얻어 호를 '난계'라 직접 지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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