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산사)

옥천사(玉泉寺) 청련암(靑蓮庵)

공간(空間) 2015. 11. 15. 20:44

 

옥천사(玉泉寺) 청련암(靑蓮庵)

(경남 고성군 연화산)

 

 

청련암(靑蓮庵)의 전설

 

(1) 서봉(瑞峯)스님과 혜우(惠雨)스님의 방광이야기

고종16(1879)년의 일이다. 청련암(靑蓮庵)에 서봉(瑞峯)스님이 계셨다.

서봉스님은 환갑을 지난 나이에 출가하여 참선이나 간경을 하지 못하게 되자 염불을 하기로 결심하고 매일 조석으로 정화수를 떠놓고 서쪽을 향해 단정히 앉아 일념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지송하였다. 세월이 흘러 입적이 가까웠을 무렵에는 중풍이 와서 몸을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고 대소변을 받아내었다. 시봉도 하루 이틀이지,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게 되자 방에서 아무데나 대소변을 누는 형편이 되어 방안에 구린내가 진동했다. 큰절에서 끼니때마다 공양을 지어다 날랐는데 공양을 들고 간 행자들이 냄새 때문에 서로 방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싸우는 형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원스님과 부전스님의 꿈에 화관을 쓴 불보살들이 꽃가마를 운반해 와서 서봉스님을 가마에 태워 서쪽 하늘로 날아가는 꿈을 꾸었다. 꼭 같은 꿈을 꾼 두 분 스님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청련암(靑蓮庵)에 울라가 서봉스님의 방문을 열어보았더니 스님은 앉은 채로 입적하셨고 구린내 나던 방은 이상한 향기가 진동하였다. 그리고 서쪽 하늘에서 풍악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다비하는 날 밤에는 청련암(靑蓮庵)은 물론 온 산중에 대낮같이 밝은 서기가 뻗쳤다. 절에서는 방광 사실을 몰랐는데 동네 주민들이 옥천사(玉泉寺) 근방의 하늘이 대낮같이 밝으므로 필시 불이 났다고 생각하고 물통 등 소방도구를 챙겨 부리나케 절에 올라왔으나 불은나지 않았다. 소란 소리를 듣고 스님들이 나가보았더니 옥천사(玉泉寺) 부엌이 훤했다. 그리고 어디서 빛이 나는지 알 수 없고 그림자가 생기지 않았다. 사람들은 비로소 옥천사(玉泉寺)입구 다비장에서 뻗어 오른 방광임을 알게 되었다. 이는 사리가 방광을 하는 것으로 주민들은 절에서 불이 난 것으로 오인했던 것이다. 이에 감명을 받은 옥천사(玉泉寺) 스님들은 자신도 모르게 나무아미타불염불이 나왔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옥천사(玉泉寺) 입구(버스 주차장입구) 바위에 서봉인오방광탑(瑞鳳印悟放光塔)”이라는 7자의 각자를 새겨 놓았다.

비슷한 시기에 꼭 같이 방광하신 스님이 한 분 더 계신다. 혜우(惠雨)스님이시다. 혜우스님도 서봉스님과 마찬가지로 늦게 출가하여 청련암(靑蓮庵)에서 나무아미타불을 지극 정성으로 구송하더니 입적시에 방광을 하였다. 서봉스님 방광탑 옆에 혜우방광탑(惠雨放光塔)”이란 각자가 따로 새겨져 있다. 두 스님의 이야기는 실화로서 일념으로 염불하면 이처럼 사리에서 방광(放光)을 하는 수가 있다. 이 같은 영험은 옥천사(玉泉寺) 뿐 아니라 통도사, 해인사, 범어사, 대원사 등 여러 사찰에서 종종 있는 일이다.

 

청련암 입구에 있는 탑과 부처님~

 

 

 

청련암(靑蓮庵)

 

청련암(靑蓮庵)

 

닥종이 솥

 

옥천사(玉泉寺)는 정조 말기에 "어람지 진상사찰"로 지정되어 철종14(1863) 해제될 때까지 60여 년 동안 닥종이 제조 부역에 시달렸다. 스님들은 공양만 먹으면 닥나무 껍질을 벗겨 끓인 후 이를 찧어 계곡물에 일렁거려 종이를 뜨는 노역에 시달렸다. 노역에 질린 스님들은 하나 둘 떠나기 시작,  정조말기에 340명을 헤아리던 스님 숫자가 철종 15년 해제될 때는 10여명이 남았다 한다. 옥천(玉泉)계곡에서 자라는 닥나무는 품질이 좋은데다 색색으로 물을 들여 진상하였으므로 조정에서는 옥천사(玉泉寺) 닥종이를 최고로 쳐주었다. 이때 쓰던 유물로서 유일 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지금 청련암(靑蓮庵)에 무쇠 솥이 남아 있다. 닥나무 껍질을 벗겨 이 솥에 넣어 끓이던 유물이다.

 

청련암(靑蓮庵) 처마에는 종이로 만든 고기가 많이 달려 있다.

 

청련암(靑蓮庵) 삼성각(三聖閣)

 

청련암(靑蓮庵)   삼성각(三聖閣)

 

청련암(靑蓮庵) 은행나무~

 

찰피나무~

경상남도 기념물 82호.

 

찰피나무<보리수(菩提樹)>

 

청련암(靑蓮庵)에 있는 찰피나무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82호이며, 피나무과에 속한 낙엽교목으로 꽃대가 좁고 긴 포엽이 중간에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 나무는 한그루의 노 거목이었으며,(높이 15m, 가슴높이줄기둘레 2.2m, 수관폭은 동서로 14m, 남북으로 18m에 이르며 나무의 나이는 약 250년으로 추정되었었다), 지금은 관리소홀로 고사하고, 그 주위에는 어린맹아들이 자라고 있다.

 

찰피나무의 잎은 피나무류 중에서 가장 크고 둥글고 가장자리의 톱니는 예리한 치아상이다. 잎 뒤에 흰색의 성상모(星狀毛)가 발생한다. 염주알처럼 생긴 열매가 가을에 익는다. 불교도들은 이 나무를 흔히 보리수(菩提樹)나무라고 부른다. 이 나무 앞에는 옛날부터 스님들이 앉아서 참선수도하던 넓적한 돌들이 놓여 있는데 하도 오랫동안 사용했기 때문에 스님들이 앉았던 자리가 움푹 하여 빗물이 고일 정도이다.

 

 

청련암(靑蓮庵)

 

청련암(靑蓮庵)

 

청련암(靑蓮庵)에서 바라본 운무속의 옥천사 계곡~

 

* 우중이라 청련암(靑蓮庵) 산신각뒤의 호랑이굴과, 황소바위를 보지 못하고 내려오는 아쉬움이 남는다.

 

1)호랑이 굴.

청련암(靑蓮庵) 산신각 뒤에 바위굴이 하나 있다. 이 굴은 예전부터 호랑이굴이라는 이름이 전해 내려왔는데 가끔 호랑이가 출입하는 광경이 목격되곤 하였다. 눈이 많이 와서 날씨가 추운 날에는 옥천사(玉泉寺) 부엌에도 호랑이가 와서 앉았다가 가곤 하였다한다. 연화산(蓮華山)에 호랑이가 있었으나 지금은 전설로만 남았다.

 

2)황소바위 이야기

청련암(靑蓮庵)에 들어서면 황소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황소가 누워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황소바위라 불리 운다. 오른 쪽 윗부분을 두드리면 소 엉덩이를 두드리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난다. 어느 때 통행에 지장이 있다하여 석수를 시켜 목 부분을 잘라내려 하자 바위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날 밤 감원 스님의 꿈에 황소가 나타나 슬피 울더라고 한다. 그리하여 바위를 그대로 두게 되었는데 손상된 부분에는 지금도 피가 흐른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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