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河(산하) : <여행>

팔공산 비로봉(八公山 毘盧峰)

공간(空間) 2012. 11. 3. 20:49

 

 

팔공산 비로봉

( 毘盧峰) : 해발 1193m

40년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팔공산 정상인 비로봉~ 정상에는 표지석은 없다 그냥 바닥에 삼각점이 있을뿐이다.

팔공산은 삼국시대부터 공산(公山), 중악(中岳), 부악(父岳)으로 불려져 온 영남의 명산이다

특히 중악이라 불리게 된 것은 신라 오악중의 하나였다.

신라오악은 토함산(동악), 계룡산(서악), 지리산(남악),태백산(북악) 그리고 팔공산(중악)을 말한다.

 

비로봉(毘盧峰)'비로'는 불교에서 '높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비로(毘盧)자나'는 모든 곳에 두루 비치는 부처님 몸의 빛을 뜻한다. 또한 '비로(毘盧)자나불'은 법신불을 뜻한다. 즉 산봉우리에 붙은 비로봉이란 이름에는 그 산에서 최고 높은 봉우리라는 뜻과 불교적 의미가 함께 내포돼 있다.

또한 팔공산은 신라 오악(五岳) 가운데 중악(中岳)에 해당하는 산이다. 통일신라의 중심 산으로서 당시 공산이라고 불렸다. 신라 오악은 동악(토함산), 서악(계룡산), 남악(지리산), 북악(태백산)등도 포함된다.

 팔공산 비로봉은 서봉, 동봉 등으로 명명돼 있는 팔공산 주요 봉우리들은 예전에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비로봉은 제왕봉, 동봉은 미타봉, 서봉은 삼성봉비로봉(毘盧峰)은 제왕봉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정상에서의 조망이 아주 좋다. 그러나 흉물스러운 기지국과 중계탑 그리고 군부대만 빼구나면~

하지만 우리 삶에서 없어서는 안될 시설물이기에 우리가 조금 이해하고 양보하는것이 군자의 마음이 아닐까~

 

 

 

 

팔공산 천제단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신사시대 삼산오악에서 제를 지낸 기록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통일신라 시대 이전부터 고려 시대까지 국왕이 직접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해 제를 올렸던 곳으로 고려시대 이후 중단되었으며 비로봉의 개방과 함께 2012년 10월 3일 대구시에서 개천 대제를 올렸다..

 

 

 

 

 

 

 

 

 

팔공산 비로봉과 동봉 등산길에 바라본 염불암~

2012년 10월 21일

 

염불암 : 법당 뒤에 있는 큰바위에서 염불소리가 들려이곳에 암자를 지어 불렀던데서 유래 한 것이다.

동화사 사적명비(同華寺 寺蹟碑銘)에는 신라말 928(경순왕 2) 영조선사(靈照禪師)가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에는 만력(萬曆) 40(1612)"에 창건 하였다고 되어 있고 1962년 개축시 발견된 "양간록(樑間錄)1438,1768, 1841년에 중창 했다는 기록이 있어 창건 연대928년에가까울 것으로 본다.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

1988530일 대구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었다팔공산 동봉(東峰)에서 약간 낮은 서쪽편 초원지에 있는 커다란 화강암 바위에 거의 입체상에 가까울 정도로 깊이 조각되어 있으며, 비로봉을 바라보고 있다.

해발 1,155m 고지에 위치한 이 불상은 높이가 약 6m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으로, 지면에서 상당히 높은 곳에서 비로봉을 향해 바로 서 있다눈썹 사이에 점이 없고, 풍만한 두 볼이 입가의 미소와 잘 조화되어서 소박  하면서도 자비스러운 느낌을 준다 목은 거의 몸통에 붙어 있고 두 귀는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머리는 소발(素髮)이며 넓고 편평한 육계(肉髻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를 가졌으며, 반쯤 뜬 눈은 가늘고 길게 표현되었는데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두 볼은 살이 찐 편이고 입가엔 미소를 띠고 있어 온화하고 자비스러운 불심을 느낄 수 있으며신체에 비해 얼굴은 좀 크게 표현되었다 거대한 불상을 올려다보며 예불을 드리는 예배자들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된다. 법의(法衣)는 도포자락처럼 무릎 아래까지 닿아 있지만, 곧바로 서있는 발끝은 들어나 보이고 발가락도 형상이 뚜렷하게 조각되어 있다.

그러나 양손과 마찬가지로 신체의 비례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크게 표현되어 그 수법이 세련되지 못하다.

오른팔은 아래를 향하여 손바닥을 안쪽으로 돌리고 있으며 왼팔은 가슴 앞으로 들어 올려 중지와 엄지를 구부리고 있어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추측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그리고 광배(光背) 역시 머리 뒤에 빛의 테두리를 새겨 놓았던 것 같이 보이지만 마모가 심하여 잘 보이지 않는다. 이 거대한 입불은 기형적(畸形的)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커다란 몸통과 조화를 잘 이루는 법의나 표정 등의 조각 수법으로 보아 관봉(冠峰)의 좌불상(坐佛像)과 같은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 되지만 확실한 연대는 불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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