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릉원(大陵苑)이란 이름은 '味鄒王(미추왕)을 大陵(대릉:竹長陵)에 장사지냈다'는 '三國史記(삼국사기)'의 기록에서 딴것이라 한다.
대릉원(大陵苑)은 경북 경주시 황남동에 자리한 신라의 고분군으로 경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분군이다.
20여기의 능이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미추왕릉(味鄒王陵), 황남대총 등이 있으며, 내부를 공개해 유명해진 천마총(天馬塚)도 이곳에 있다.
신라미추왕릉(新羅味鄒王陵)
사적175호
신라 제13대 미추왕(味鄒王, 제위 262~284)을 모신 곳으로, 대나무가 병사로 변하여 적군을 물리쳤다는 전설에 따라“죽현릉(竹現陵)” 이라고도 한다. 미추왕(味鄒王)은 김알지(金閼智)의 후예로 신라(新羅) 최초의 김씨(金氏) 왕이며, 여러 차례 백제(百濟)의 공격을 막아내고 농업을 장려하였다. 경주시내 평지고분 가운데에서도 대형분에 속한다.
내부 구조는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일 것으로 추정된다. 능 앞에는 화강석으로 만든 혼이 머무는 자리인 혼유석(魂遊石)이 있으며. 특이하게 담장을 둘러 무덤 전체를 보호하고 있으며, 대릉원(大陵苑) 담 밖 조금 떨어진 무덤 앞쪽에는 위패를 모신 숭혜전(崇惠殿)이 있다.
숭혜전(崇惠殿)에는 신라 최초의 김씨 임금인 13대 미추왕(味鄒王)과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30대 문무대왕(文武大王), 그리고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敬順王)의 위패(位牌)를 모신 곳이다.
원래는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敬順王)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사당을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고 인조 5년에는 동천동(東泉洞)에 사당을 지어 동천묘(東泉廟)라고, 경종(景宗) 때에는 경순왕전(敬順王殿) 이라고 하다가 정조 18년에(1794)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황남전(皇南殿)이라 하였다.
그 후 고종 때에 사당을 크게 짓고 숭혜전(崇惠殿)이라는 편액을 내리고 미추왕(味鄒王)과 문무대왕 (文武大王)의 위패(位牌)도 같이 모시게 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미추왕릉은 大陵(대릉) 또는 竹長陵(죽장릉)등으로도 불리우는데,전해져 내려오는 전설로는 미추의 다음왕인 儒理王(유리왕) 14년(297)에 伊西國(이서국) 金城(금성)을 침공하므로 크게 군사를 일으켜 막았으나 물리치지 못하였는데, 갑자기 귀에 댓잎을 꽂은 이상한 군사들이 몰려와 아군과 함께 적을 격파하였다. 적이 물러간 뒤 이 군사들이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버렸다.
여러곳을 살펴보았더니 댓잎이 미추왕릉 앞에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비로소 선왕의 음조인 것을 알고 이에 미추왕릉을 竹現陵(죽현릉), 또는 竹長陵(죽장릉)이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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