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2 <꽃말,유래,전설>

모과꽃 -14

공간(空間) 2014. 4. 27. 21:56

 

 

 

 

모과꽃

 

꽃말 :  조숙, 정열, 평범

* 모과 이야기

모과는 모과나무의 열매로서, 중국이 원산지이며 늦은 봄에 엷은 홍색의 청초한 꽃을 피우고, 늦가을 서리가 내리면 노랗게 익어 사람들의 건강에 기여합니다.

나무참외(목과, 木瓜)라는 별칭을 지닌 모과열매는 일명 성호과(성인을 보호해준 열매)라고도 합니다.

옛날 한 도승이 산길을 가던 중에 계곡의 외나무다리 위에서 커다란 뱀 한 마리를 만나서 진퇴양난 (進退兩難)의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바람 한 점 없는 잔잔한 날임에도 어디선가 홀연히 굵은 모과열매 한 개가 날아와 뱀의 머리를 맞추어서 스님을 보호했다는 일화에서 성호과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목에 좋은 열매라는 의미에서 모과라고 칭하기도 하며, 모과의 외향이 뒤틀려져 있어서 성격이 유별나고, 순수하지 않은 경우에 '모과나무 심사(心思)'라는 말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동의보감에는  "모과는 갑자기 토하고 설사하면서 배가 아픈 위장병(곽란)에 좋으며 소화를 잘 시키고 설사 뒤에 오는 갈증을 멎게 한다. 또 힘줄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다리와 무릎에 힘이 빠지는 것을  낫게 한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초강목에서는 "모과는 주독(酒毒)을 풀고 가래를 제거한다.

 

그리고 모과는 3번 놀라는 과일'이라고 한다. 꽃이 아름다운데 열매가 너무 못 생겨서 1번 놀라고, 못생긴 열매가 향기가 매우 좋아서 2번 놀라고, 향기가 그렇게 좋은데 맛은 없어 3번 놀란다고 한다.

 

*모과의 전설

 

고려(高麗) 공민왕 2(1353)에 예의판서(禮義判書) 심동로(沈東老)가 지금의 갈천리에 왔을 때의 일이다그의 손자 심원복(沈原福)이 이 고을 삼척 현감(縣監)으로 있을 당시 이 모과나무를 심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모과나무를 심은 이후부터 심씨 가문은 번창 하였다고 한다.

심동로의 본관은 삼척이다. 처음 이름은 한(), 호는 신재(信齋)라 했다.

문림랑군기주부(文林郞軍器主符) 심적충(沈迪沖)의 현손이며 검교(檢校) 심수문(沈秀文)의 아들이다.

일찍 등과 하여 한림으로 있었다. 부모를 모시기 위해 지방 수령으로 나가기를 자원했다. 공민왕 1년 (1352) 통천군수에 임명되었다. 그는 내서사인지제교(內書舍人知製敎)에 올랐다.

그러나 벼슬에 뜻이 더 없었으므로 고향 삼척으로 돌아갈 생각만 간절했다.

 드디어 벼슬을 버리고 왕에게 고향 삼척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했다.

 왕은 그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뜻을 높이 사서 <노인이 동쪽으로 간다>고 하여 동로(東老)라는 이름을 내렸다. 이로부터 그의 이름은 심동로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22대 손인 심흥묵(沈興默)이 모과나무 옆에 변소를 짓게 되었다.

 변소를 지은 후 어느 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모과나무 옆 변소에서 백발이 성성한 도인이 나오면서, ", 모과나무 옆에 변소를 지었느냐" 고 심한 꾸중을 하였다.

 그 후 며칠 뒤 심흥묵은 원인 모를 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심흥묵이 사망한 후 한 달 뒤에 두 아들이 사망을 하게 되고 이어서 또다시 보름 후에 어머니 마저 돌아가셨다.

 이렇게 심씨 가문은 계속 초상을 치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심씨 가문이 기울기 시작하여 집안이 어렵게 되자 심재민은 모과나무 밑의 변소를 철거 하였다. 철거 후 모과나무 옆에는 그 누구도 변소를 지을 수 없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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