桃花<도화>
꽃말 : 사랑의 노예
복사꽃 : 복사는 복숭아의 준말이고, 복사꽃은 복숭아꽃의 준말이입니다.
복숭아꽃보다 복사꽃이 발음하기 쉽고 한결 화사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복사꽃을 한자로는 도화(桃花)라고 하며, 복숭아나무를 복사나무, 도수(桃樹)라고도 합니다. 엷은 분홍빛의 아름다운 얼굴을 도안(桃顔)이라 하며, 복숭아꽃 연분홍빛은 도화색(桃花色), 도홍색(桃紅色)이고 꽃말처럼 사랑의 노예되어 도원경, 도화동, 복사골에 살았구나, 복사꽃 절경이 절경중 에서도 으뜸이라 매혹되고 연신 감탄하니 복사골이 무릉도원이로다~
복숭아는 중국의 전설이나 도교쪽에서 신성한 과일(선과)로 표현된다.
신선계나 천상계에서 수명을 연장시키는 과일로 등장하며, 신선이나 옥황상제가 먹는다는 과일이다.
그리고 복숭아에는 귀신을 쫓는 능력이 있다고도 전해진다.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몰아낼때 복숭아나무 가지로 때린다고 하며, 복숭아나무 근처에 묘를 쓰지 않는다고 하며, 제사를 모시는 집안에는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는다. 불로장생의 영약인 영지도 원래는 복숭아 나무에서 난 것을 최고로 친다고 한다.
다음의 도원경(桃源境)에 대한 고사는 이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이야기 해주고 있다.
★복사꽃 전설 -1
진(秦) 나라 때 호남무릉(湖南武陵)의 한 어부가 배를 저어 가다 보니 복숭아 꽃이 만발한 수원지가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작은 굴이 하나 있어 들어가 본즉, 넓은 별천지가 펼쳐지고 그곳에는 옛날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하여 온 사람들이 바깥 세상과는 인연을 끊은 채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어부는 그 마을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면서 며칠 묵은 뒤 돌아오면서 그 길을 표시해 두었다. 그리고는 그 고을 태수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자 태수(太守)는 사람을 보내어 그 곳을 찾아보게 하였으나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이후로 사람들은 그곳을 찾으려 하지 않고, 이야기로만 전해진다.
서양의 유토피아는 없는 곳이란 뜻이다. 도연명도 이상향 (理想鄕) 으로 도원경을 그리며 인간이 찾을 수 없는 곳이라 말하고 있으며,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고도 한다.
* 이상향 (理想鄕) =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이상적이고 완전한 상상 세계
복사꽃 전설 -2
<도화와 비형>
신라 제 25대 진지왕은 굉장한 호색가였다.
왕은 어느날 사량부에 사는 여인인 도화랑이라고 불리는 딸이 너무나 예쁘다는 말을듣고 그녀를 궁중으로 불러 자신의 사애로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여자가 지켜야 할 보물은 정조인데 그 보물은 어떠한 권세부터 빼앗길 수 없을 뿐 아니라 더군다나 현재 자신은 남편이 있는 몸이기 때문에 왕의 말을 따를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왕은 죽이겠다고까지 위혐을 해보았으나 그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왕은 이에 "그렇다면 네 남편이 없으면 되겠느냐?"라고 물으니 "그때는 되겠습니다"
라고 대답을 한 뒤에 비로소 그녀는 왕으로부터 풀려 날 수 있었다.
그 해에 왕은 정난으로 말미암아 폐위되자 얼마되지 않아 죽고 말았다. 그 후 2년이 지나자 그녀의 남편도 병들어 죽었다. 남편이 죽어 백일째 되던 날 밤, 진지왕의 혼이 도화를 찾아갔다. 왕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도화의 방으로 들어가 "지금 네 남편이 없으니 옛날 약속한 것을 지켜라!" 하고 말했다.
도화는 이를 부모에게 알렸던 바 군왕의 명이므로 거역할수 없다는것이 부모들의 의견이었다.
그리하여 도화는 왕과 7일간 부부의 정을 맺었다.
왕이 머무는 동안 오색 구름이 지붕을 덮고 향기가 방에 가득하더니 7일이 지나자 왕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이로부터 도화는 태기가 있어 달이차서 해산하려는데 천지가 진동하더니 한 남자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의 이름을 비형이라 했다. 진평대왕이 이 아이에 대한 사연을 듣고 비형을 궁중에서 길렀다.
비형이 15살이 되자 집사라는 벼슬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매일 밤마다 궁중에서 밖으로 나가 귀신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놀다가 새벽에 절의 종소리가 들리면 귀신들도 흩어졌으며 비형도 궁중으로 돌아오는것이었다.
왕은 이 사실을 알고 비형으로 하여금 귀신들을 이끌고 신원사 북쪽의 개천에 다리를 놓도록 명하였다.
그러자 곧 비형은 귀신들을 불러모아 일을 시켜 돌을 다듬어 하룻밤 사이에 큰다리(이 다리는 그 후 귀교라고 불리었다. 오늘날 경주의고적으로서도 손꼽히고 있다.) 를 놓았다.
진평왕은 이에 감탄하여 귀신들의무리중에 인간으로 현신하여 조정의 정사를 도울만한 자가 있으면 추천하라 하니 비형은 길달이라는 귀신을 천거하였다.
과연 그를 임용하고 보니 그는 충성되고 곧기가 비할데 없었다, 그리하여 왕은 크게 기뻐하여 자식이없는 각간의 임종에게 주어 그를 양자로 삼게 했다.
임종은 길달에게 명령하여 홍륜사 남쪽에 문루를 세우게 하고 길달을 매일밤 그 문루위에서 자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문을 길달문이라 했다. 어느날 길달은 여우로 변하여 도망하자 비형은 귀신을 시켜서 잡아 죽였다. 이로 말미암아 귀신들은 비형을 매우 무서워하여 그의 이름만 들어도 달아
났다 한다.
당시 이 사실을 사람들이 알고,
성제의 혼이 아들을 낳았으니
바로 비형랑의 집이었네.
날고 뛰는 귀신의 무리.
여기에는 머무르지 말라!.
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훗날 사람들은 이 가사만 적어 문에 붙여두어 귀신을 물리치면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