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소호헌 (安東 蘇湖軒) 보물 제475호
경북 안동시 일직면 소호헌길 2 (망호리)
조선 중종 때 문신 서해(徐嶰)선생이 서재로 쓰기 위해 명종(재위 1545∼1567) 때 지은 별당이다.
친구들과 늦가을의 의성 고운사와 고운 최치원 문학관을 찾았다가 남안동 IC로 가는 길에 잠시 들린 소호원(蘇湖軒).
안동 소호헌 (安東 蘇湖軒) 보물 제475호
“약봉태실(藥峯胎室)”이라 적혀 있습니다.
이곳이 약봉(藥峯) 서성(徐渻)이 태어난 곳이다.
보호수 수령 270년의 은행나무 가을 단풍이 물들 때면 아름다움을 자랑 한다.
안동 소호헌 (安東 蘇湖軒) 보물 제475호
경북 안동시 일직면 소호헌길 2 (망호리)
조선 중종 때 문신 서해(徐嶰)선생이 서재로 쓰기 위해 명종(재위 1545∼1567) 때 지은 별당이다.
본래 소호원(蘇湖軒)은 안동 법흥동 임청각(臨淸閣)을 지은 고성이씨(固城李氏) 이명(李洺)의 다섯째 아들이자 청풍군수를 역임한 이고(李股)를 분가시키며 지어준 집인데, 이고(李股)에게는 무남독녀인 앞 못 보는 외동딸에게 장가온 서해(徐嶰)가 이 집 주인이 되었다.
소호원(蘇湖軒)의 이름은 “소호(蘇湖)”라는 지명에서 비롯되었다.
고려시대 정 4품 벼슬을 지낸 소씨가 살았다는 “소(蘇)”. 서쪽에 큰 호수가 있다는 뜻의“호(湖)”가 합쳐져 생긴 이름이다.
안채의 대청마루 안쪽으로 “약봉태실(藥峯胎室)”이라 적혀 있습니다.
이곳이 약봉(藥峯) 서성(徐渻)이 태어난 곳이다.
고성이씨(固城李氏)와 서해(徐嶰)는 3년만에 아들 서성(徐渻)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서해(徐嶰)는 아들이 두 살이 되기 전 죽고,
혼자남은 고성이씨(固城李氏)는 소호원(蘇湖軒)을 정리하고 한양으로 올라가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장사를 합니다.
빼어난 솜씨로 술(약산춘)과 유과와 찰떡(약과와 약식)을 만들어 팔았으며,
놀라운 결단력과 모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들 서성(徐渻)은 어머니 고성이씨(固城李氏)의 수고와 노력에 부응하듯 이십 대 후반에 과거에 급제하여 호조판서, 병조판서, 형조판서를 역임하였으며 사후에 영의정(領議政)으로 추증되었으며 충숙공(忠肅公)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아버지 서해(徐嶰)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제자였고, 아들 서성(徐渻)은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제자였다.
소호헌(蘇湖軒) 앞마당 한편에는 순국지사(殉國志士) 서상부(徐相孚)의 기적비(紀蹟碑)가 세워져 있다.
서상부(徐相孚)는 한말 의병장으로 1896년 의성 봉산 전투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애국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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