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신춘문예 작

[스크랩] 신춘문예 당선 등 우수한 작품 읽기

공간(空間) 2019. 1. 21. 20:10

신춘문예, 공모전 당선 등 우수한 작품 읽기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랜섬박스- 류휘석


내겐 매일 허들을 넘다 실패하는 광대들이 살아요
불필요한 기념일이 빼곡한 달력, 숨 쉴 날이 없어요
나 대신 종이에 누워 숨 쉬는 사람들
밤이 되면 광대는 잠을 자고 나는 일어납니다


나는 허들을 치우고 부서진 광대들을
주워 종이 상자에 집어넣습니다
그늘을 뿌리는 거대한 인공 나무,물을 줘요
잘 자라서 더 크고 뾰족한 허들을 만들어내렴
그렇지만 모든 게 나보다 커져서는 안 돼,


광대들은 일도 하지 않고 아침마다 이불을 걷어냅니다
나는 토스트처럼 튀어 올라 침실을 접어 내던져요
나를 어지럽히는 벽시계와 발목에 생긴
작은 구멍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커집니다


방이 비좁아서 나는 밖에 있습니다
밖이 끝나면 집에 돌아가 상자를 만들어야 해요
재사용 종이는 거칠고 단단해서 반성에 알맞습니다
천장에 붙어 기웃거리는 가녀리고 얇은 나의 광대들
반성이 시작된 집은 무덤 냄새가 나는 요람 같아요


나는 탄생부터 기워온 주머니를 뒤집습니다
바닥은 먼지로 가득찹니다
도무지 채워지질 않는 상자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 실패와 실종
내가 죽으면 광대들은 허들을 넘을까요
궁금해서 죽지도 못합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당신의 당신 - 문혜연


새들의 울음은 그들의 이름이 됩니다
우리는,어떤 이름을 갖게 될까요
원래 인간은 제 이름보다
남의 이름을 더 많이 부르는 종이잖아요


나는 당신의,당신은 나의 이름을
새들에게 우리는 우리일까요
우리를 대신할 말을 찾아요
수많은 단어들이 사라져요


뻐끔거리던 입술들이 짝을 짓습니다
입술을 부딪치며,서로에게 옮아가는 인간들
새들은 인간과 상관없이 날아다닙니다


새들은 새들이고,우리는 우리입니다
부리를 부딪치는 새들은 정다운 만큼
가벼운가 봐요
자신을 닮은 사람을 세 번 만나면
죽는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어요


지렁이와,지렁이 모양 젤리
그걸 공포라 할 수 있나요
머리와 꼬리를 알 수 없는 젤리는
달콤하고 모호한, 주인모를 관계들


우리는 점점 닮아 가는데
누가 누굴 닮은 건지 모를 때는
어떻게 할까요,


당신은 지금 2%의 당신 자신과,
98%의 당신의 당신 순도 높지 않은 당신,
그리고 나 끝 모를 바닥으로 가라앉아요


새들은 언제나 아득한 높이에서 웁니다
그림자도 생기지 않을 물에는
새의 밑면만 지나갑니다
깊이 가라앉은 바닥,그곳에서 우리는
떠오를 수 없는 낮은 음,낮은 울음
새들의 이름은 그들의 인사가 됩니다


우리의 울음도 우리의 내일이 될까요
안녕,당신,안녕 유언 같은 안부를 주고받아요
우리는 새들의 세계에서도,
서로의 이름만 부르고 인간은 역시,
새들에게는 이해받을 수 없나봅니다


▲1992년 8월 6일 서울 출생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4학년 재학 중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캉캉 - 최인호


발목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불란서 댄서들은 하이힐에 올라야
비로소 태어나지 발끝을 모으지
분란은 구두 속에도 있고 탁아소에도 있고
어쩌면 태리는 눈의 결정 속에서도 자라고
오후 세시에는 캉캉이 없다


모르는 사람이랑 대화하려면
쓸데없는 말들이 필요해요
식탁 아래서 발을 흔들고 유쾌해졌지
아무 것도 흔들리지 않는 것 같아서
몰래 휘파람 부는 것 같아서 뉴스를 튼다


신은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은 가십을 만들죠
상반신만 보이는 아나운서의 팔을 믿으며
캉캉은 감춰지는 중 양말 속에 주머니 속에
불란서 댄서들의 스포티한 팬티 속에
빨간 주름치마가 되어 덤블링이 되어 지구가 돌아간다
구세군 냄비에 눈이 쌓이고
내년에는 내년의 근심이 기다리겠지


고향이 어디입니까 묻는다면
제왕절개 했습니다 답하겠지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는 것 같아서
마음은 캉캉.
발끝을 들어 올릴 때마다 불거지는 중



▲1988년 서울 출생
▲강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너무 작은 숫자 - 성다영


도로에 커다란 돌 하나가 있다
이 풍경은 낯설다
도로에 돌무더기가 있다
이 풍경은 이해된다


그린벨트로 묶인 산속을 걷는다
끝으로 도달하며 계속해서 갈라지는
나뭇가지 모든 것에는 규칙이 있다


예외가 있다면 더 많은 표본이 필요할 뿐이다
그렇게 말하고 공학자가 계산기를 두드린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렇기에 더 중요합니다
너무 작은 숫자에 더 작은 숫자를 더한다
사라져가는 모든 것은 비유다 망할 것이다


한여름 껴안고 걸어가는 연인을 본다
정말 사랑하나봐 네가 말했고
나는 그들이 불행해 보인다는 말
대신 정말 덥겠다
이제 그만 더웠으면 좋겠어
여기까지 말하면 너는 웃지
그런 예측은 쉽다
다영씨가 웃는다


역사는 뇌사상태에 빠진 몸과 닮았다
나무 컵 받침이 컵에 달라붙고
중력이 컵 받침을 떼어낸다
물이 끈적인다
컵의 겉면을 따라 물방울이 아래로 모이는 동안
사람과 사물은 조금씩 낡아간다
조용한 공간에 금이 생긴다
되돌릴 수 없다


▲서울에서 살고 있음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중퇴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엄마는 저렇게 걸어오지 않는다 - 노혜진


예순두 살에 뽀얀 속살입니다
시야각으로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다 벗고 만날 수 있고 온몸을 훑고도 괜찮아요
엄마는 때수건과 우유를 손에 들고 옵니다
우리는 깨끗해집니다
두꺼운 발톱과 무좀을 병이라 부릅니다
탕의 수증기는 소리와 이야기를 불러 모읍니다
“그 발 톱으로 네일 숍에 왔대”
동료들이 웃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엄마 얘기만 합니다
아빠 얘기만 하는 동료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없니?” 질 문은 되돌려집니다
알고도 모르는 것들을 생각


[🍒2019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박신우


별이 깃든 방,
연구진들이 놀라운 발견을 했어요
그들은 지금까지 발견된 별 가운데
가장 크기가 작은 별을 발견 했습니다


그 크기는 목성보다 작고 토성보다 약간 큰 정도로,
지구 열 개밖에 안 들어가는 크기라더군요


세상에 정말 작군요,
옥탑방에서 생각했어요
이런 작고 조밀한 별이 있을 수 있다니 하고 말이죠


핵융합 반응 속도가 매우 낮아서
표면은 극히 어둡다고 합니다
이제야 그늘이 조금 이해되는군요 ​


이 별의 천장은 매우 낮습니다
산소가 희박하죠
멀리서보는 야경은 아름다울지 몰라요
어차피 낮에는 하늘로 추락하겠지만
그래도 먼지가 이만큼이나 모이니
질량에 대해 얘기할 수 있군요


그건 괜찮은 발견이에요
먼 곳에서 별에 대해 말하면 안돼요
다 안다는 것처럼 중력을 연구하지는 말아야죠


피아노 두드리듯 논문을 쏟아내지 말아요
차라리 눈물에 대해 써보는 게 어때요


별의 부피를 결정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둘레를 더듬는 일이죠
옥상 난간을 서성거리는 멀미처럼 말이에요


여기 옥탑에서는 중력이 약해서
몸의 상당부분이 기체로 존재해요
그래요 모든 별들은 항상 지상으로
언제 떨어질지 숨을 뻗고 있는 거죠

출처 : 대구생활문인협회
글쓴이 : 시인🐯李大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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