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한루(廣寒樓)는 원래 광통루(廣通樓)라 하였으나 조선(朝鮮) 세종(世宗) 16년(1434) 정인지(鄭麟趾)가 중건(重建)하고 광한루(廣寒樓. 보물 제281호)라 개칭(改稱)하였으며, 그 뒤 정유재란(丁酉再亂)때 소실(燒失)된 것을 인조(仁祖) 16년(1638)에 재건(再建)하였다.
청허부(淸虛府)
정면의 중앙에는 일중(一中) 김충현이 쓴 청허부란 현액이 걸려 있는데 청허부는 하늘나라 옥경의 (광한 청허지부)에서 따온 것으로 이 문이 월궁의 출입문임을 상징하고 있다.
완월정(玩月亭)
옛날 옥황상제가 계식 옥경에는 광한전이 있으며, 그 아래 오작교와 은하수가 굽이치고 아름다운 선녀들이 계관의 절경 속에서 즐겼다는 전설이 있다.
완월정(玩月亭)
영주각(瀛洲閣)
영주각(瀛洲閣)이란 편액과 영주각에서 바라본 광한루의 풍경을 노래한 4개의 편액이 걸려있다.
광한루(廣寒樓)
광한은 달나라 궁전을 뜻한다. 춘향과 이몽룡도 바로 이곳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맺게 되었다. (보물 제 281호)
방장정(方丈亭)
방장은 전라감사 송강 정철이 삼신도를 조성함에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방장정이 세워진 시기는 1963년부터 시작된 광한루원 확장 정화계획에 따라 당시 남원군수 이화익의 창안으로 도편수 이한봉이 건축하였다
자라석 뒤로 보이는 것이 오작교~
오작교(烏鵲橋)
견우와 직녀 둘의 만남이 너무 애 닳아 칠월칠석 이날에는 지상의 까치와 까마귀가 모두 은하수로 올라가 다리를 만들어 둘을 만나게 했는데 까마귀와 까치가 만든 다리를 밟고 만나는 견우와 직녀의 눈물이 비를 만들었다. 칠월칠석날이 되면 비가 오고 까마귀와 까치를 볼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며 까치의 머리가 흰 것은 오작교가 된 까치의 머리를 견우와 직녀가 밟아 벗겨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같은 하늘나라 견우와 직녀의 사랑은 신분의 벽을 뛰어 넘은 이도령, 성춘향의 사랑과 흡사하다. 이러한 전설을 지상에 펼쳐놓은 것이 광한루원의 호수와 오작교다. 그래서 오작교는 까마귀 오(烏), 까치(鵲), 다리(橋)자를 쓴다.
광한루(廣寒樓)
광한루(廣寒樓)
광한루(廣寒樓)
광한루(廣寒樓)
월매집(月梅집)
조선시대 우리나라 고전 '춘향전'의 무대가 된 집이다.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광한루 구경 길에 올랐을 때, 그네를 뛰고 있던 성춘향에게 반해, 춘향이 살고 있는 월매집 부용당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집으로 춘향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월매집’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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