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양귀비(꽃양귀비)
개양귀비(꽃양귀비), 꽃말은 덧없는 사랑,
울진 트랙킹 가는 길에 만난 꽃양귀비.
양귀비 하면 마약을 연상할지 모르나 여기에서 만난 꽃양귀비는 개량종으로 마약성분이 없는 관상용 꽃이다. 꽃이 미약성분이 있는 양귀비보다 적고 덜 예쁜 것 같다.
화초양귀비 또는 꽃양귀비라고 불리는 이 화초는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꽃을 피우는데, 금년에 보는 양귀비는 여러 가지 색을 뛰운다.
양귀비의 미색을 탐하여 정사를 팽개치고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당나라 현종이 떠오른다.
역사 속의 양귀비는 당나라 현종(712-756)의 귀비(貴妃)였습니다.
귀비라는 칭호는 후궁 중에서도 가장 지위가 높은 궁녀를 지칭하는 벼슬로 임금의 총애를 한몸에 받는 여인을 말한다.
양귀비는 원래 현종의 아들의 귀비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현종이 아들의 귀비인 양귀비에 반해서 나이 60에 아들의 후궁을 빼앗아 자신의 귀비로 삼은 것이지요. 참으로 아름다운 미색을 가졌었나 봅니다.
그러나 아무리 탐이 나도 그렇지 아들의 마누라를 빼앗아 자신의 후궁으로 삼다니..
현종은 그것도 모자라 양귀비의 두 자매도 귀비로 삼았고 사촌오빠인 양국충은 재상이 되었다고 하니 결국 양귀비는 그 미모 하나로 가족 모두를 궁으로 불러들인 셈이지요.
그만큼 양귀비는 절세의 미인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여인이었는데요, 옛말에 미인박명이라는 말도 있듯이 양귀비 역시 인생항로가 순탄하지 않았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은 비운의 여인이 되고 말았는데, 양귀비를 등에 업은 젊은 장군 안록산은 20만 대군의 통수권까지 거머쥐게 되었지만 양국충과의 알력으로 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안녹산의 반란으로 수도를 빼앗긴 현종은 도망을 다니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황제의 측근들은 황실의 몰락이 양씨 일가 때문이라며 양귀비와 양국충을 처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안녹산은 양귀비의 연인이었다는 소문도 있으나 그것을 확인할 방법은 물론 없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미인은 지금처럼 에스라인이 아니고 풍만한 여인이 미인의 표본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양귀비도 예외는 아니었겠지요. 그러고 보면 미인의 기준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게 분명한 것 같으니 다소 풍만한 사람도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시도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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