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河(산하) : <여행>

보길도 윤선도 원림 <1>

공간(空間) 2012. 3. 14. 21:44

보길도 윤선도 원림甫吉島 尹善道 園林 )

 

윤선도(尹善道 1587~1671)는 조선중기의 시인이자 문신으로 본관은 해남,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이다. 고산은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등 여러 관직을 지내다 정쟁에 휘말려 파직되어 낙향. 해남에서 지내다. 병자호란 때인(1637) 왕 인조를 돕기 위해 식솔(食率)을 거느리고 강화도로 향하던 중 삼전도(三田渡)의 치욕(恥辱)소식을 듣고 이에 통분(痛忿)하여 세상을 멀리하고자 뱃머리를 탐라(耽羅)로 돌려 항해도중 보길도(甫吉島)를 지나다 수려한 경치에 이끌려 황원포(黃原浦)에 배를 정박 보길도에 머물게 되었다.이때 고산의 나이 51세로 이후 1671년 돌아가실 때까지 7차례 보길도를 왕래 13년간 보길도에 머물면서 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40수와 32편의 한시(漢詩)를 창작하였으며, 격자봉 아래에 낙서재(樂書齋)와 무민당(無悶堂)을 짓고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학문에 몰두하고 제자를 가르치면서 세상의 근심을 잊었다. 

 

보길도 윤선도 원림 입구와 매표소

 

세연정 조감도

 

 

동대(東臺)

세연정에서 바라보아 오른쪽 판석보 옆에 위치해 있고, 그 규모는 가로 6.7m세로 7.5m의 장방형으로높이는 약 1.5m이며 자연석으로 쌓아 올렸다.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가 불리워지면 여러 사람이 어울려 군무(群舞)를 즐겼던 곳으로 평형이다.

 

서대(西臺)

현재는 나선형으로 세단이 남아 있으며 그 규모는 축단(築壇)의 한 변이 7.5m 정도의 정방형이며그 높이는 2.2m에 이른다. 동대와 대칭을 이루고 있는 곳을 동대에서 행했던 군무(群舞) 행위를 했던 곳으로 춤을 추며 돌면 전상에 오르도록 나선형 계단을 이뤘다.

 

세연정(洗然亭)

세연(洗然)이란 주변경관이 물에 씻은 듯이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뜻으로고산연보(孤山年譜)에서는 1637년 고산이 보길도에 들어와 부용동을 발견했을 때 지은 정자라고 하고 있다. 정자의 중앙에는 세연정(洗然亭). 동쪽에는 호광루(呼光樓).서쪽에 동하각(同何閣). 남쪽에 낙기란(樂旣欄) .이라는 편액을 걸었으며 또 서쪽에는 칠암헌(七岩軒)이라는 편액을 따로 걸었다.

 

세연정(洗然亭)

 

 

세연정(洗然亭)

 

세연정(洗然亭)

 

 

세연정(洗然亭)

 

비홍교(飛虹橋)

보길도지에는 세연정이 못의 중앙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정자 서쪽 제방동쪽 겨우 한간쯤의 넓이에 물이 고여 있으며, 중아에는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의 암석이 있다. 거북이등에 다리를 놓아 누()에 오른다고 기록하고 있어 이 다리를 비홍교라 불렀다. 지금은 그 자리에 잡석을 쌓아 호안과 방단(方壇)이 연결되어있어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사투암(射投岩)

세연정 주변의 잘생긴 바위 일곱을 지칭하여 칠암(七岩)이라 불렀는데, 그 중 하나인 사투암은 옥소대를 향하여 활을 쏘는데 발받침 역할을 하였다고 전해지는 바위로 연못쪽이 들려진 모습이다. 들려진 부분에 발을 딛고 옥소대쪽 과녁을 향하여 활을 쏘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혹약암(惑躍岩)

세연지 계담(溪潭)에 있는 칠암(七岩) 중의 하나이다. 이 바위는 역경(易經)의 건()에 나오는 혹약재연(惑躍在淵) 이란 효사(爻辭)에서 따온말로, 뛸 듯하면서 아직 뛰지 않고 못에 있다는 뜻이다. 즉 혹약암은 마치 힘차게 뛰어갈 것 같은 큰 황소의 모습을 닮은 바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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