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백세각<을사사화에서 유림의 숨결까지>

공간(空間) 2005. 1. 22. 23:18

百世閣안에 있는 忠肅公 倻溪(宋希奎)할아버지의 不祧廟

 

 

‘을사사화’ 비극서 유림의 숨결까지..

<성주군 백세각>

경북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에는 유형문화재 제 163호인 백세각(百世閣)이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채 자리 하고 있다.

정면 7칸, 측면 7칸의 맞배지붕 □자형의 이집은, 조선 중기 명종 6년(1551)에 나의 14대조 송응규(宋應奎) 인의공(引儀公) 할아버지의 동생인, 야계(倻溪)또는 야계산옹(倻溪散翁) 송희규(宋希奎)할아버지가 건립 한 것이다.

야계(倻溪)할아버지는 요즘 사극<여인천하>에 나오는, 당시 임금의 외삼촌인 윤원형(尹元衡)의 행패를 탄핵했다가, 역적으로 몰려(을사사화) 전라도 고산(孤山)으로 귀양을 갔었는데 5년간의 귀양살이를 끝내고 돌아와 마을 이름을 고산리라 고쳐 부르고 백세각(百世閣)을 건립하였다.

이 백세각(百世閣)의 특징은 쇠못을 전혀 사용치 않고 , 당시의 전통적인 한옥 양식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데, 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할아버지가 유배생활을 마친 후라 생활이 궁색하고 가진게 없어 집을 세울때 못을 구하기 힘들어 나무에 구멍을 뚫고 싸리로 얽었으며 대패질을 하지 않고, 자티만 깍아 다듬었다고 전한다.

특히 이 백세각(百世閣)은 1919년 3.1운동 당시 유림의 대표들이 모여 파리 강화회의에 제출할 한국 독립청원서인 파리장서를 이곳 다락방에서 만들었으며, 같은 해 4월 2일, 경북 성주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을 모의한 장소로 유명하다.

또 이건물은 지세가 워낙 강해 수탉이 집안에 들어오면 울지 못하고 잘날던 독수리도 지붕위를 지나가다 날지 못하고 떨어지는가 하면, 비오는날 자정이면 말발굽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기 때문에 종손(宗孫) 이 아니면 무서워 잠을 자지 못하였다고 전해온다.

그리고, 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할아버지의 후손들은 이 백세각(百世閣)을 중심으로 살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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