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들레의 다른 이름들(무슨들레, 포공초, 금잠초, 문둘레, 않은뱅이)
* 민들레 전설 <1>.
옛날 어느 마을에 부자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는 외동딸이 있었다. 그 딸에게는 큰 고민이 있었는데 젓가슴에 종양이 생긴 것이었다.
통증은 심했지만 가슴이라 누구에게 보일수도 없어 그냥 전전긍긍 하고 있었다.
이것을 안타깝게 본 딸의 몸종이 마님께 이 사실을 대신 말해주었다. 그런데 마님은 그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딸이 외간 남자를 사귀어서 그렇게 된것으로 생각하고 딸을 크게 나무랬다.
딸은 어머니의 모욕적인 말에 도저히 참을 수도 없고 또 의원에게 가슴을 보이기가 너무나 부끄러워 강물에 뛰어들기를 결심을 했다.
결국 딸은 강물에 뛰어들고 말았는데 마침 그곳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와 딸이 물소리를 듣고서 가보니 어떤 여자가 물위에 떠있었다.
그 여자를 구해내고 젖은 옷을 벗겨 새옷을 입히려는데 가슴에 종양이 보였다.
급히 어부는 딸을 시켜 산에 올라 어떤 약초를 캐오도록 하였다.
결국 그 처녀는 몇일 동안 그 약초를 달여먹고 종양이 없어 졌다.
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자집에서 사람을 보내 딸을 데리러와 다시 돌아가기로 하였다. 하지만 어부와 그 딸이 너무 고맙고 정이 들어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어부가 바로 그 약초를 주면서 "만약에 또 종양이 생기면 이 약초를 달여 드십시요" 그 처녀는 그 약초를 가지고 집에 돌아와 집의 뜰에 그것을 심었는데 어부와 그 딸의 이름인 "포공영(蒲公英)"으로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 민들레 전설 <2>.
경상북도 경주에는 민들레꽃에 관해서 이러한 애틋한 사연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
옛날에 한 노인이 민들레란 소녀와 단 둘이서 살았다. 노인은 칠십이 넘어서 허리가 활 같이 구부러 졌지만 아직도 기력이 정정하여 들로 다니면서 일을하였다.
그래서 두 식구는 먹을 양식을 걱정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엇다. 손녀 딸은 나이가 열 일곱 살로 꽃봉오리처럼 피어 오르는 처녀가 되어 욕심을 내지 않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욕심을 내는 사람중에는"덕"이라고 부르는 더꺼머리 총각은 노인의 손녀 딸을 아내로 삼고 싶어서 열렬히 사모하고 있었다. 덕이는 나무를 하려 산으로 가다가 운이 좋아서 민들레와 마주치면 몸가눌 바를 모르고 나무 지게를 쓸데없이 두드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덕이는 민들레의 생각으로 병이 날 지경이었다.
덕이는 이렇듯 그리움 속에 애릇하게 원하던 민들레와 생각지도 않게 한집에 살게되는 행운을 갖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노인의 집은 냇물과 가깝기 때문에 조금만 비가 와도 집으로 물이 들어왔다.
그런데 오랫동안 장마로 온통 물바다가 되어서 노인이 떠내려 갈 지경이 되었다. 덕이는 노인에게 자기집으로 피난을 오라고 권고했다. 노인은 아무말 없이 손녀 딸을 데리고 덕이의 집으로 피난을 왔다. 민들레와 한집에서 살게 되자 덕이는 그토록 그리워 하던 민들레를 자기 품에 안고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말았다. 이제 둘 사이는 남남이 아니었다. 덕이는 사람이 성실하고 근면하여 혼례식을 치루지는 않았지만 노인을 모시고 민들레와 함께 살았다. 그러나 양식은 언제나 넉넉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그런데 꽃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을 즈음, 나라에서 처녀를 뽑아 간다고 마을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였다. 이유야 어쨌든 얼굴이 반반한 처녀를 무조건 잡아 가는데 민들레 아가씨도 뽑혀가게 되었다.
군졸들이 그녀를 데리고 가려고 하자 덕이와 노인은 길길이 뛰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민들레는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마침내 그녀는 가슴에 품었던 푸른 비수를 꺼내어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어 죽고 말았다. 그녀가 자결을 하자, 그 곳에서 난데 없는 꽃 한 송이가 피어났는데 사람들은 사랑을 못 다하고 죽은 민들레의 넋이 꽃으로 되어 피었다고 민들레 꽃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꽃말 : 감사하는 마음. 내사랑 그대에게 드려요.